석류의 빛깔(Sayat Nova, 1968) 하얀 바탕 위에 석류가 놓이고, 칼이 놓이고 그 밑으로 핏빛 액체가 번져간다. 남자의 발이 탐스러운 포도를 짓이기면 글씨가 기록된 석판 위로 흥건한 과육이 흐른다. “내게 있어 삶과 영혼은 고문이다.” 반복되는 나레이션과 극도로 탐미적이며 퇴폐적인 이미지들, 그리고 보여주는 칼과 장미. 이 영화는 ‘그저 한 시인의 인생 이야기가 아니라는 점’을 밝히면서 시작한다. 그렇다. 이건 그 자체로 시다. 흔히 ‘영상충격!’ 따위의 선전 문구가 적힌 영화들을 보면서 정말로 충격을 받은 경우는 흔치 않다. 하지만 이 영화는 그 흔치않은 충격의 집합 가운데 적지 않은 공간을 차지하며 내 기억 속에 자리 잡고 있다. 누군가에겐 지루할 수 있지만 나에겐 첫 자막 아래 보이는 배경의 강렬한 색상부터 마지막 크레딧이 오르는 .. 더보기 이전 1 ··· 416 417 418 419 420 42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