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newstrend report]/영화

적벽대전 2 - 거대한 저항의 불길이 치솟다!



고전이 현대의 우리에게 주는 지혜란 무엇일까요? 오래도록 기다려온 오우삼 감독의 적벽대전 후편이 드디어 개봉했습니다. 아시다시피 그 유명한 삼국지의 명승부를 소재로 엄청난 스케일에서부터 화재를 모아온 영화. 과연 어떨까요?


“고전이란 시대를 초월하여 삶을 위한 지혜의 양식이 되어온 가치 있는 책을 의미한다. 인류가 역사를 거듭해 오는 동안, 어느 시대든 고전을 필요로 하겠지만 오늘날 우리에게는 그 어느 때 보다도 고전이 소중한 의미를 지닌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지금 커다란 문명사적 전환의 시점에 처해있기 때문이다...

인간 정체성이 위협받는 이 시점에서 우리는 과거에 삶의 고비마다 분투했던 선인들의 지혜를 절실히 필요로 한다.”

-정재서 (이화여대 중문학과 교수, <세계의 고전을 읽는다>-동양 문학편 중)


21세기가 시작되고, 세계는 9.11 테러라는 대사건을 겪었습니다. 얼마 전에는 영화의 개봉에 앞서 이스라엘의 야만적 학살 행위가 벌어져 지구촌 사람들에게 큰 충격과 슬픔을 주었고요. 우리나라 또한 작년 촛불저항에 이어 신년 용산 참사까지 온 국민이 큰 슬픔과 분노를 겪고 있죠. 그렇습니다. 과학발전과 인권의 확립, 민주화로 진행되어온 현대를 사는 우리에게 끔찍한 야만이 도전해오고 있습니다.


적벽-삶의 고비에서 분투한 선인들의 용기와 지혜, 어둠과 야만의 시대에 불을 밝히다


사실 작년부터 적벽대전이 개봉한다는 소식을 듣고 한 가지 의아한 점이 있었습니다. 바로 오우삼 감독이 예전에 했던 인터뷰가 생각나서요. 기억하시는 분이 있으실지 모르겠는데, 9.11 테러가 벌어지고 미국의 모 토크쇼에서 액션 명장인 오우삼 감독과 전화 인터뷰를 진행합니다. 당시 오우삼 감독은 큰 충격을 받고 앞으로 폭력을 소재로 한 액션이 아닌 희망을 줄 수 있는 사람들이 나오는 영화를 제작하려 한다고 했었고요. 그런데 전쟁 영화라니. 전쟁처럼 극단적인 야만과 폭력을 소재로 한 것이 어디 있을지. 여기에 대해서 오우삼이 선택한 방향은 확실합니다. 바로 반전영화가 되겠죠. 실제로 오우삼은 압도적인 힘을 가진 악에 저항하기 위해 약한 사람들이 힘과 지혜를 모으면 이길 수 있다는 희망을 전하려고 삼국지의 적벽대전을 소재로 했다 합니다. 또한 이번 후편에서는 극의 테마인 반전사상이 더욱 분명히 들어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우리 모두가 미쳤다”는 공명의 말이나 “이 전쟁엔 승자가 없다”는 주유의 말이 극의 중요한 지점에서 테마를 부각시키고 있죠.

또한 조조의 캐릭터는 영화에서 군국주의와 제국주의를 대변하고 있습니다. 압도적인 군사력으로 손권이 왕으로 있는 오나라를 침략한 그가 종국에 내뱉는 한마디도 “이것은 군사력 싸움이다.”라는 자신만만한 호기입니다. 그런데 여기에 대항하기 위해 모인 오나라 수군들과 유비의 군사들은 그 병력에서 도저히 상대가 되질 않죠. 설상가상으로 조조가 보낸 시체들로 인해 병사들은 싸워 보기도 전에 전염병에 걸리는 타격을 입습니다. 그러나 나약해 보이는 오나라 군대에게도 승부를 걸만한 것이 있었으니, 바로 주유와 제갈공명이라는 두 천재 지휘관 입니다. <전쟁론>의 저자인 카를 폰 클라우제비츠도 전쟁에서 위대한 업적을 이루기 위해 필요한 것은 독특한 천재들이라고 말했을 정도죠. 실제로 두 지휘관의 책략과 전술은 위기마다 빛을 발합니다. 또한 손권과 병사들도 위기에 맞선 자들 특유의 결연한 의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희생과 용기가 오나라 군사들의 마음에 가득한 것이죠.


궁지에 몰린 약자들이 택할 수 있는 가장 극단적인 저항, 화공이 시작됐다!

수적으로 열세이면서 궁지에 몰린 집단이 택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전술. 바로 불을 이용한 화공입니다. 동서양의 병법들이 지적하고 있는 가장 기본적인 부분이기도 하고요. 하지만 불이란 것은 다른 무기들 보다 상대적으로 굉장히 위험한지라 그것을 다루는 사람 또한 목숨을 걸어야 합니다. 어지간해선 하지 않죠. 영화 속의 화공 장면 또한 자신들의 가족과 나라를 지키기 위한 병사들의 죽음으로 이뤄집니다. 화살과 창이 몸에 박혀 들어와도 불붙은 항아리를 들고 조조의 적진으로 돌진하는 사람들. 화약이 폭발하고 거대한 불길이 치솟습니다. 그 불길을 뚫고 전진해가는 주유의 수군들. 이들은 결국 조조와 정면대결을 펼치게 됩니다. 

이 영화에서 가장 박진감 넘치고 장대한 스케일을 보여주는 장면이기도 합니다. 오랜 시차를 두고 개봉한 때문인지 장면 전환이나 구성, 사운드 등 후반작업이 아주 완성도 높게 이뤄져 있고요. 액션의 동선과 긴장감이 살아있는 앵글도 뛰어납니다. 역시 액션의 거장이라는 감탄사가 나올만한 부분이죠. 혹자는 이 영화가 스케일에 가려 인물이 죽었다고 비난하기도 하지만 여기엔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왜냐면 이것은 인간의 의지를 거스르는 거대한 흐름으로 인해 위기에 몰린 집단의 저항을 보여주는 <군상극>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영화에서 몇몇의 주인공이 갈등을 통해 극을 전개하는 유형을 기대한다는 것부터가 번지수를 잘못 찾은 것이죠. 우리가 이 영화에서 눈여겨 볼 점은 각각의 등장인물 마다 보여주는 지혜와 희생정신, 그 용기들입니다. 게다가 전쟁이란 본질적으로 개인성은 말살되고 목적을 이루기 위한 도구로서 인간이 대상화 되는 비극이죠. 이것이 영화에 그대로 반영되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조조가 자신을 따르던 병사들이 전염병으로 죽자 그들의 시신을 도구로 이용하는 부분이 가장 대표적인 사례고요.

결과적으로 주유의 말마따나 전쟁은 그 누구도 승자라고 할 수 없을 정도의 엄청난 희생을 치르고 종결됩니다. 물론 오나라는 침략자들을 물리쳤으나 남아있는 사람들의 삶을 지켜낸 것은 이름 없이 죽어간 수많은 병사들입니다. 조조로 대표되는 권력층의 욕망을 이루기 위해 계급도 다른 가난한 피지배층들이 군사력과 학살의 도구로 나서면서 일어난 전쟁. 그들을 무찌르기 위해 죽어간 역시 가난한 소시민들. 과연 승자는 없다고 할 수 있겠죠. 우리에게 전쟁이란 것의 본질과, 어쩔 수 없이 싸워야 한다면 과연 누구를 위해, 무엇을 위해 싸우는 것이 옳은 것인가를 생각하게 하는 작품입니다. 특히나 지배력을 가진 권력자가 있는 세상에선 인간이 불의를 이루기 위한 도구로 전락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자각해 볼 수 있습니다. 침략자인 조조의 병사들을 통해서 말이죠. 얼마 전 벌어진 팔레스타인 학살이 떠오르는 군요. 전투기에 앉아 미사일 발사 버튼을 누르며 민간인들과 UN 시설을 폭격한 이스라엘 병사는 과연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또한 정치적 목적을 위해 권력자들을 방어하며 시민들에게 방패와 몽둥이를 휘두르던 전-의경들은요?


적벽대전2
-그 스케일과 영화적 재미도 뛰어나지만, 2009년 난세를 사는 대한민국 국민들이라면 한번쯤 볼만한 영화가 아닐까 합니다.



- 이 글은 오마이 뉴스 영화 코너에도 참여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