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인 출신(시인) 감독답게 짜임새 있는 구성의 이야기 구조가 완성도를 높입니다.
신분제 사회라는 족쇄, 관습적 고정관념(동성애가 금기시 되는 이성애 중심의 사랑관은 물론, 오직 한 사람만 사랑해야 한다는 관념-사랑하는 대상을 서로 공유하지 못하는 관념적 벽. 예를 들어 왕이 무사의 양성애적 정체성을 인정하고 왕후와 함께 무사의 사랑을 공유했을 경우 파국으로 치닫지는 않았겠죠), 강제적인 삶의 방식에 희생당한 자들의 사랑과 격정, 증오와 회한 등을 깔끔한 구성으로 담아냈습니다. 사회적 요구와 개인적 욕망이 충돌하며 갈등을 불러일으키는 소재를 통해 우리의 삶을 돌아보게 만들어요. 자신의 행복은 물론 상대방까지도 배려하는 사랑이란 무엇일까를 고민하게 하더군요. 전개 과정에서 중요한 부분마다 음악과 사운드도 만족스럽습니다. 화려한 소품들도 공을 들인 티가 많이 나고요.
정사 장면에 대한 연출이 색계를 모방한 듯 하지만 결정적인 차이라면 카메라의 움직임과 배우를 담아낸 각도가 너무 평이하다는 것을 눈치 채실 겁니다(성애 장면의 수위는 색계에 근접하지만 투박한 분위기는 브로크백 마운틴을 닮았습니다). 마치 우리나라 성인 비디오물이 정사 장면을 찍듯이 한곳에 카메라를 고정하고 있는 그대로 행위를 찍는 수법이 주를 이루는데 마치 동물의 왕국을 방불케 합니다. 그런데 이 영화의 등장인물들이 갈구하는 것을 생각해 본다면 이러한 연출은 타당하긴 합니다. 그것은 바로 서로를 탐하는 동물적 욕구의 쾌락이거든요. 사실 정신적 사랑과 육체적 사랑의 이분법적 구분은 이 영화에선 무의미해집니다. 그들은 행위 자체를 통해 자아를 찾고 서로에 대한 감정을 발견합니다. 또 스스로가 놀라고 당황하고, 상처를 주고받으며 파국으로 치닫습니다. 행위의 쾌감을 통해 정신적 정화와 발견까지 나아가는 것이죠. 결과적으로 등장인물들이 사랑의 행위를 통해 마주하게 되는 정신적인 데미지는 엄청납니다. 규범과 관습에 따른다면 죽을 수 밖에 없는, 부정하고 싶은 절망과 아픔을 정면으로 마주보게 되는 것이죠. 판도라의 상자를 열자 온갖 아픔과 고뇌와 고통들이 튀어나오고 마지막에 조롱하듯 희망이 겨우 기어 나왔다고 하던데 이 영화는 왕의 상상-꿈 속의 장면-을 통해 이뤄질 수 없는 두 사람의 사랑으로 마지막을 장식합니다. 장르를 따지자면 비극적 게이 로맨스가 포함된 성애물입니다. 진부한 소재지만 영화 자체의 완성도는 높은 편입니다.
-아쉬운 점은 왕을 호위하던 무사가 왕후와의 사건을 통해 처음 자신의 정체성을 발견하고 충격과 혼란에 빠져 왕궁을 벗어나서 입니다. 그 부분에서 무사가 잠 못 이루며 떠올리는 장면까지 그리 투박하게 처리할 필요가 있었나 싶군요. 카메라의 시점을 관객에게 보여주는 장면으로서가 아닌, 등장인물 자신이 스스로의 경험을 돌아보는 1인칭 시점을 쓰는 것이 더 자연스러웠을 겁니다.
-극장 안 모든 관객이 웃어버린 주진모의 느끼한 쌍화점 열창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감독은 그 부분에서 두 사람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는 왕을 조롱하고 싶었던 걸까요? 절묘하게도 그 부분에서 왕이라는 캐릭터는 영화 속 상황 자체와 스크린 밖에 자리 잡은 관객들 모두가 자신을 비웃어버리는 비극적인 재앙과 마주하게 됩니다. 설마하니 감독이 일부러 의도했다면 상당한 악취미로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