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가 끝나간다.
경제가 좋아지고 한국영화도 살아나길 바라던 기대가
또 꺾인 채로 한해를 마무리할 것 같다.
작년 이맘때 즈음엔 영진위 시나리오 마켓에서 우수상을 수상한 작품의 각색 건과 맞물린 미팅으로 새로 문을 연 영화사의 피디를 만났었다. 저녁이라 삼겹살집에서 소주잔을 기울이며 대화가 오갔는데 무척이나 의아한 점이 있었다. 지금은 더하지만, 당시엔 영화판이 점점 어려워지려던 시기였기에 작품 선택에 만전을 기해야할 때였는데 제작을 하겠다는 시나리오는 정말이지 재미없었다. 그런데 사정을 듣고 보니 기가 막히다. 그 작품을 구매한 영화사는 모 재벌 회장의 친인척이 차린 신생 영화사였고 필모그래피가 없기 때문에 일단 회사의 경력을 만들기 위해 (고르고 고른 것이긴 하지만) 영진위 수상작이란 타이틀이 걸린 시나리오를 샀다는 것이다. 이게 말이나 되는가. 솔직히 까고 말해서 시나리오 마켓 수상작으로 만든 영화들 중에 흥행한 것이 뭐가 있나. 더군다나 한국영화 관객들이 막 감소하던 시기에 그런 이유로 제작할 작품을 고른다는 것이 무척이나 실망스러웠다.
아마도 신생 영화사이고 대표가 경험이 없어서 그랬던 것일까? 며칠 후 각색 작가 영입은 영화사가 돈이 없다는 핑계로 물 건너갔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래서 결국 오리지널대로 제작될 운명에 처하나 싶었던 그 작품은...일 년이 다 지난 지금 결국 캐스팅도 못하고 엎어진 듯하다. 나는 이것이 한국영화 제작의 병폐와 고리타분함을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라고 생각한다. 무엇이 관객이 원하는 작품이고 어떻게 생산해야 하는지를 결정하는 과정은 너무도 미신적이며 보스주의-독재적이다.
그리고 해가 바뀌어 2008년
경제가 더 안 좋아지고 영화계가 더 힘들어 질 것이라는 불안감이 들었다. 데뷔 후 차기작을 준비 중이던 어느 감독님에게 우리나라도 대만처럼 변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고 걱정을 전했다(한국영화가 헐리웃 영화를 제치고 승승장구하던 몇 년 전, 대만의 젊은 감독으로부터 자국 영화가 극장을 점유하긴 커녕 상영이라도 제대로 해봤으면 좋겠다던 푸념을 들었다). 이미 구성된 인프라가 있기 때문에 그 정도로 안 좋아지는 일을 없을 것이라는 답변을 들었지만. 올 한 해 한국영화계는 정말 암울함 그 자체다. 이 상태로 계속 가면 그나마 조성된 인프라도 무너지는 것이 아닌가하는 불안감마저 든다. 돌파구를 찾아야 하는데 그 해법은 무엇일까?
그런데 지난 달 말 정말 황당한 기사를 봤다. <영진위, 영화산업 활성화 위해 800억 규모 펀드조성...신규 시장 창출>이란 이데일리 보도 기사가 그것이다. 실소가 나오다 못해 모니터가 종이라면 갈기갈기 찢어버리고 싶을 정도의 충격적인 소식 아닌가? 영화 펀드라는 것이 수익성이 불확실해서 거의 다 빠져 나간 지 오래고 올 중순에 듣자니 제작비의 실질적인 규모를 차지하고 있는 것은 일부 대기업, SK와 CJ에서 나오는 돈뿐이었다는데...더군다나 산업 자체가 수익성을 잃은 마당에 어찌 펀드 조성으로 위기를 돌파하겠다는 계획을 세운 것일까? 정말이지 의문이다.
또한 기사를 보니 “영진위는 특히 영화발전기금 중 26억원을 들여 온라인 유통망을 구축, 피해 규모가 3400억 원이나 되는 불법 유통을 합법적인 유료 서비스로 전환하는 모델을 만들겠다고 발표했다.” 그래? 이제 와서 꼴랑 26억으로 과연 될까?
이러한 것들은 문제 해결을 위한 해법이라고 할 수가 없다. 수익성이 보장 안 되는 펀드야 말할 것도 없고(펀드라는 것이 쉽게 말해 금융자본 논리로 굴러가는 돈놀이다. 이득을 보는 사람이 있는 반면 누군가에게는 상처와 손실을 줄 수 있으니 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영화판 살리자고 관객인 우리 국민들의 주머니에 구멍을 뚫을 텐가?) 또 불법 다운로드가 왜 만연하게 되었는지도 생각해 봐야 한다.
콘텐츠의 상업적인 이용은 인터넷이 생긴지 20년 이상이 지나서야 생겨난 개념이다. 현재는 상업적인 콘텐츠와 공적인 콘텐츠가 공존하지만 여전히 인터넷은 시장보다 광장에 가깝다. 이것은 인터넷의 가장 중요한 원칙이 어떠한 통제도 하지 않는 E2E(end-to-end) 설계에 기반하고 따라서 코드 계층은 완전히 자유로운 상태에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시장논리의 콘텐츠는 무엇인가? 평등하게 나눠주는 것이 아닌 사적인 소유물로 돈을 벌기 위해 통제하는 것이다. 이것은 돈 있는 사람만 누릴 수 있는 등가 화폐 교환의 원칙이다.
하지만 인터넷은 가난한 사람도 누릴 수 있는 선물교환의 자유에 기반 하는 것이다. 인터넷이 자유와 민주주의 공간, 사이버 광장이라는 호칭을 얻게 된 이유가 이거다. 그런데 시장논리라는 것은 오히려 경제적 계급을 나누고 불평등을 조장하여 평등한 민주주의에 역행하는 것이며 이것이 축적되어 결국 금융자본 시스템의 위기로 터진 것이 이번 미국발 경제 위기 사태다. 영진위가 인터넷에 접근하려는 시각은 그야말로 구시대적이다. 온라인 유통망을 구축하여 시장 논리로 불법 유통을 차단하겠다는 것은 기술적으로 별 기대도 안 되고 도의적으로도 지지할 수 없다.
해법은 무엇인가?
펀드와 인터넷 시장 유통망 구축으로 끝낼 것이 아니라 진정한 해법을 찾아야 한다. 지금 한국영화의 위기를 타파하기 위해선 근본적인 원인을 해결해야 한다. 일단 영화계 밖을 살펴보자. 관객이 왜 발길을 돌리는가? FTA도 한 몫을 했지만 관객인 국민들의 경제 사정이 안 좋아지는 것도 커다란 이유다. 영화라는 것이 싼값에 즐기는 상업 예술로서 결국엔 즐기는 문화, 곧 향락과 사치에 연관된다.
사치라는 것이 명품이나 사고 외제차를 끌고 다니는 것만이 사치가 아니다. 단순히 먹고 사는 것을 넘어 문화생활을 즐기는 것 자체가 기본 생활의 필요 이상인 것이고 이것이 활성화 되려면 먹고 사는 경제가 풍족해야지 되는 것이다. 그런데 과연 88만원 세대가 넘쳐나는 지금 예전처럼 극장에서 영화 보게 생겼나? 이러한 상황에서 소비자인 관객의 심리는 같은 값이라면 다홍치마다. 한국영화가 헐리웃 영화보다 경쟁력과 재미가 없다는 거다. 이건 영화판의 내부 문제로 연결된다.
물량과 스케일에서 헐리웃의 상대가 안 된다면 다른 방식으로라도 재미를 찾아야 한다. 그렇담 재미있는 소스를 생산해야지. 그걸 누가하나? 작가와 스텝들이 한다. 우선, 이 작가들을 양성하고 데뷔 시키는 곳은 기존의 주류 교육원과 인맥들이다. 결국 기존 밥그릇 체제의 답습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있다. 한국영화 부흥과 더불어 몰락의 주역들이라고도 할 수 있을 기존의 주류 인사들이 시나리오를 평가하여 수상작을 뽑는 시나리오 마켓이 흥행작을 내놓지 못하는 이유가 이것이 아닐까 한다.
최근엔 여기에 대한 대안으로 온라인과 오프라인 상에서 작가들이 만나 스스로 시나리오를 뽑아 민주적인 투표를 거쳐 제작에 들어가는 영화사도 생겼다. 괜찮은 방식이기 때문에 지지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이런 대안적인 모습은 아직 일부이고 초기 상태라 갈 길이 멀다.
또 한 가지 가장 큰 문제는 작가에 대한 직접적인 투자와 지원책이다. 작품을 쓰는 동안 공부하고 취재하고 매달리는데 돈은 안 생기고 나라에서 지원도 안 해준다. 먹고살 길이 막막해진다. 88만원 세대가 되어 노가다를 하고 알바를 한다. 극심한 육체적 피곤과 한국사회 특유의 깡패 경제에 찌든 삶 속에서 얼마나 작품에 정력을 쏟을 수 있나? 생활고에 소진되어 겨우 남아있는 에너지로 작품다운 작품을 만들기 위해선 헐리웃 영화 ‘세븐’의 시나리오 작가처럼 몇 년의 시간, 또는 배 이상을 투자해야 한다. 그런데 누가 그걸 제대로 보상해 주려나? 우리나라가 헐리웃처럼 시장이 커서 돈도 많이 주나? 더군다나 지금은 강제규나 박찬욱 같은 사람들이 나온 예전보다도 더 어려운 신빈곤 시대이다.
사정이 이러니 작품의 기초인 시나리오는 부실해 진다. 오리지널리티가 살아있는 굉장한 작품들이 잘 안 나온다. 재미가 없고 작품성도 없다(작품성과 재미가 반비례 한다는 것은 착각이다. 어렵게 만들면 작품성이 있나?). 생계에 대한 지원 문제는 해결된 부분이 없다. 이것은 외국의 예술인 지원 사업처럼 국가 복지의 개입이 필요하다. 그런데 주류 결정권자들. 이걸 모르나? 소스 생산자인 작가에 대한 투자를 안 한다.
그리고 영화를 만드는 현장 스탭들. 30대가 넘어서까지 현장에 있는 사람들은 정말 대단한 사람들이다. 이 사람들도 생계에 대한 문제가 해결되지 않기 때문에 30대가 넘으면 거의 다 다른 직업을 찾아 떠난다. 그래서 경험의 축적문제가 거론되고, 구성원들의 실력이 직접적으로 반영되는 부분들이 불안해 진다는 말이 나오자 전문 스텝제가 도입됐다(잘 시행 되지도 않았지만). 그런데 요즘엔 30대가 넘은 인력들이 자꾸 축적(?)되는 것만 같다. 20대 시절에 살인적인 노동 강도와 박봉을 견디며 연출부 생활을 하고 30이 넘어 감독 데뷔를 준비 중인 사람도 아직까지 입봉 소식이 안 들린다. 마치 우리 사회 실업자들이 축적되는 것처럼 날개를 펼치고 날아오를 날을 기다리는 사람들도 점점 쌓여가는 것 같다. 그러다가 다른 길을 알아보는 수순이 있긴 하지만.
따지고 보면 영화 노동자들의 처우와 노동 환경은 정말 반 인권적이다. 그런데도 무슨 사명감으로 영화를 만드는 걸까? 정말 이런 꿈을 가진 사람도 만나봤다. 내가 만든 영화가 사람들에게 위안을 주고 살아가는데 힘을 주고, 더 좋은 사회를 만들면 좋겠다는. 문제는 제작의 칼자루를 쥔 사람이 이런 가치관을 공유할 수 있는가다. 더군다나 제작비는 자본가들의 주머니에서 나온다. 우리 사회의 자본가, 영화에 제작비를 투자하는 대기업들은 과연 그 부를 어떻게 쌓았을까? 존경받는 방법으로? 김용철 변호사가 비리를 폭로할 때도 신분의 위협을 느낄 정도였다는 기업 삼성. 그런 곳의 계열사라 그런지 CJ는 살인 청부 스캔들에 휘말리기도 한다. 아, 그런 자들의 돈으로 결국 누구 배 채워주려고 영화를 만드나. 정작 현장의 영화 노동자들은 죽어나가는데.
분명한 사실은 이거다. 한국영화는 몰락했다. 원인은 형성된 시장을 정확히 분석해서 대처하지 못했고 파이를 올바르고 공평하게 분배하지 못해서 효과적인 인프라가 형성, 유지되지도 못했다. 지난 10년간의 모습은 마치 경쟁과 팽창을 반복하다 꼬라박은 금융자본 시스템의 위기와 비슷한 구석이 있다. 이거야말로 잃어버린 10년이 아닌가. 지금이라도 정신 차렸다면 실패한 10년을 교훈 삼아 작품을 만들어내는 영화 노동자들에 대한 직, 간접적 투자와 노동-생산 시스템의 혁신으로 높은 등급의 완성품을 내놓을 수 있어야 한다. 또 인터넷이란 공간을 정확히 이해하고 선물교환 법칙으로 지속 가능한 산업 메커니즘을 개발해 미래에 대비할 필요가 있다. 앞서 언급한 영진위의 대응책을 보건데 영화 산업도 전문 연구소 설립과 연구원 인력의 확보가 시급하다.
또한 연기도 못하면서 인기만 가지고 스타 행세하는 배우들도 있다. 더군다나 평등을 원칙으로 하는 민주 공동체 사회에서 지나친 부의 집중과 독점은 부도덕한 것이다. 때문에 스타는 선망과 동시에 시기의 대상이 되어 시달린다. 몇몇의 식상한 인물이 인기와 부를 독점하는 ‘스타 마케팅’은 내수 시장이 작고 미디어가 발달한 우리나라에선 너무나 비효율적이기 때문에 없어져야 한다.
그리고 중요한 문제. 내수 시장을 버릴 것이 아니라면 영화 산업은 국민들과 같이 가야 한다. 무슨 말인고 하니, 평소에는 부를 독점하고 특권 의식을 가지고 우쭐거리는 스타와 기득권 종사자들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집단이 어려울 때만 FTA 반대 시위에 참여해서 스크린 쿼터 폐지에 맞서게 도와달라며 대중에게 머리를 숙이는 행태 같은 것은 그야말로 코미디라는 거다. 대중과의 정서적 멀어짐을 경계할 필요가 있다. 일부 잘나가는 스타들은 말한다. 노후 보장이 안 되니까 상품 가치 있을 때 많이 벌어놔야 한다고. 잘나가던 시절엔 영화사들이 테헤란로 벤처 단지 근처에 여기저기 들어서고 임원들까지 목에 힘을 주고 다녔다.
그런데 참으로 뻔뻔하다. 노후 보장 안 되는 연예 산업 노동자들이 자기들 뿐 인가? 그렇게 공동체의 부를 긁어모아 개인이 소유하면서 좋은 일은 얼마나 하나? 물론 남모르는 선행을 해온 연예인들도 많다. 이기적인 몇몇 스타가 전체 이미지를 흐리는 것이다. 결국 흥행이란 것은 공동체 구성원들의 지지가 있어야 되는 것인데, 한국영화가 부흥했을 때의 행태들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또한 관객인 국민들의 주머니가 풍요로워지도록 정부의 민생 정책에 간섭하고 적극적으로 비판해야 한다. 이것은 대기업 자본이 정치를 장악한 우리나라에선 제작비 투자처를 포기하란 이야기로 들릴지도 모른다. 그런데 돈 되면 투자하는 것이 우리나라 대기업 아닌가? 정 아니면 적극적으로 다른 투자자를 찾아야할 일이다. 대기업 투자의 그늘에서 벗어나도 뻑가는 작품을 내놓을 수 있는 도전력과 시스템이 절실하다. 부도덕한 대기업의 투자 대신 진실한 사회적 기업과 함께 성공하는 영화를 만들어야 한다.
이러한 것들은 그 수용과 실행을 위해선 먼저 의식의 혁명이 필요하다. 보이는 모든 것들이 애초 보이지 않는 인간의 상상력에서 시작되어 만들어진 것이란 점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혁신적인 변화일수록 마찰을 일으키기 쉽기 때문에 실무자들의 남다른 각오와 행동력은 물론 민주적인 열린 자세가 필요하다. 그런데 현실은? 지금의 한국영화를 이끈다는 주류 기득권 결정자들, 그들 대부분의 판단과 행동은 너무나 구시대적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