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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strend report]/영화

<인 디 에어> 사람의 존재 그리고 공동체


해고, 단순한 사실 통보로 족한 것인가?

 
  
문자 해고 문제를 다룬 <시사IN> 기사 "16년 일하고 문자로 해고된 노동자" 캡쳐.
ⓒ 시사IN

얼마 전 문자로 해고통보를 받은 노동자들의 기사를 읽었다. 물론 이런 일들은 예전부터 심심치 않게 벌어지고 있는 문제들이다. 그것도 열악하고 힘든 환경 속에서 일하는 근로자들에게 그런 일들이 벌어지고 있어 더욱 큰 충격을 주는 사회문제다.

굳이 약자에 대한 배려와 보호라는 화두를 끌어들이지 않더라도 이것은 인간에 대한 예의를 무시하는 폭력적 행위다. 회사에서 취하는 해고의 방법이란 곧 인권문제와 연관되는 것이다. 왜 그런가?

사람들은 생의 많은 부분들을 일터에서 보내고 있다. 때로는 어떠한 일을 한다는 단순한 사실이 그 사람에 대한 인상을 형성하기도 한다. 사람이 하는 일 뒤에는 그가 사회, 즉 공동체 속에서 자신의 능력과 정체성을 인정받고 싶는 욕구가 잠재되어 있기 때문. 잠깐 동안의 아르바이트라 하더라도 일이란 결국 그 사람의 삶을 형성하게 된다. 즉 사람이라는 존재의 표현 가운데 하나인 것이다.

남을 해고시키는 직업이 있다고?

그런데 노동자에게 문자를 보내 당신은 해고 되었습니다, 내일부터 나오지 마세요. 라고 통보한 다는 것은 사람을 도구로 대하는 폭력이다. 상처받는 감정을 가진 인간에 대한 존중을 파괴하는 행위. 살아있는 타인의 감정을 향해 안 좋은 소식을 전한다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여기 평생 동안 남들을 해고하는 업무를 담당해온 한 남자의 이야기가 있다. 곧 개봉하는 영화 <인 디 에어>가 바로 그것이다.

 
  
작품상을 비롯 아카데미 6개 부문 후보로 지명된 <인 디 에어>.
ⓒ CJ엔터테인먼트

새로운 직원을 채용하는 것만큼이나 신중하고 어려운 일이 해고라는 철학을 가진 주인공 라이언 빙햄. 그가 이런 철학을 가지게 된 것은 업체의 의뢰를 받아 해고사실을 통보하는 회사에서 오랜 시간 출장 근무를 해왔기 때문이다.

그런데 처음 보는 새파란 미모의 신입사원 나탈리가 사장의 마음을 뒤흔들어 놓는다. 직원들의 엄청난 출장비용을 줄일 혁신안으로 화상채팅을 통한 해고 시스템을 제안한 것이다.

그동안 해고 통보 출장을 위해 비행기를 타며 모은 천문학적인 마일리지로 곧 기체에 이름까지 새겨지게 될 예정인데다가 공항과 호텔에서 집보다도 더 편안함을 느낀다는 라이언.

그가 그녀의 제안에 쉽게 동의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하다. 무엇보다도 해고를 통보하는 일이 타인의 감정에 다가서야 하는 어려운 일임을 절실히 알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자신이 심리학을 전공했다며 자신만만해 하는 그녀와 이미 훅 가버린 사장의 마음을 어떻게 되돌릴 수 있을까. 라인언은 먼저 자신을 해고해보라는 도발적인 요구로 나탈리를 몰아붙이며 실제 상황에서 벌어지는 무수한 변수들로 그녀를 당황하게 만든다. 하지만 사장은 그동안 현장에서 배운 노하우들을 그녀에게 전수해 줄 것을 지시하고 어쩔 수 없는 두 사람의 동반 출장이 시작되는데. 이것이 영화의 메인 줄거리다. 하지만 앞으로 전개되는 이야기들은 깨나 흥미롭게 진행되는데 등장인물들마다 탄탄한 개성과 사연들을 가진 살아있는 캐릭터들이기 때문.

완벽한 구조 속에 담긴 살아있는 캐릭터, 관계와 삶을 성찰하다 

 
  
사자의 눈초리로 라이언을 잡아먹을 듯 바라보는 도전적인 신입사원 나탈리.
ⓒ CJ엔터테인먼트

아카데미 작품상 후보에 지명될 정도로 짜임새를 가진 이 영화는 해고되는 노동자들의 사연들을 나열하지 않는다. 대신 그 업무를 담당하는 라이언을 중심으로 사람이라는 존재와 그들이 형성하는 관계를 통해 감정을 탐구하고 삶을 성찰한다. 사람이 살아오면서 복잡한 내면을 형성하듯 라이언 역시 이중적으로 보일 수 있는 행동을 하는데 바로 사적인 영역에서의 무감각이다.

가족들과도 연락하지 않고 영혼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사랑도 믿지 않으며 오직 물질적인 서비스와 마일리지 적립만으로 행복을 찾으려는 라이언. 그가 해고자들과의 면담에서 보이는 따스함과 인간적인 면모는 모두 가면일 뿐일까. 흥미로운 점은 누구보다 차가운 태도로 업무에 임하는 나탈리가 사적인 영역에서는 매우 감수성이 풍부하다는 점이다. 그녀는 라이언의 내면을 알고 나서 경악과 비난을 늘어놓기 시작하는데. 적반하장식으로 어처구니 없어하는 라이언과 티격태격하는 나탈리는 어찌됐든 공동의 업무를 통해 우정을 쌓아가고. 영화는 갈수록 재미있어진다. 라이언의 앞에 비밀에 쌓인 한 여인이 나타난 것이다.

 
  
갑작스럽게 나타난 신비의 여인 알렉스에게 처음으로 진정한 사랑을 느끼기 시작하는 라이언.
ⓒ CJ엔터테인먼트

그녀의 이름은 알렉스. 라이언은 첫눈에 반한 그녀를 통해 처음으로 자신의 내면을 돌아보고 사랑을 느끼기 시작한다. 게다가 결혼을 앞둔 여동생을 오랜만에 찾아가 가족들을 만나며 자신의 미래를 고민하기 시작하는데. 영화가 충분히 재미있으면서 또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시나리오 역시 완벽에 가까운 구조로 형성되어 있다는 점이다. 라이언을 중심으로 세 사람의 인물이 크게 세 가지의 서브플롯을 형성하는 영화의 구조는 마지막 반전을 군더더기 없이 함축하는 하나의 은유가 되고 있는 것이다.

오락성과 작품성을 완벽하게 겸비한 <인 디 에어>. 영화광들은 물론이고 봄이 와서 극장이라도 한번 가보고 싶은 사람들은 결코 놓치지 말아야할 뛰어난 작품이다. 특히나 아직도 문자로 해고를 통보하는 우리 사회에서는 보다 많은 구성원들이 이 영화를 보고 인간의 존재와 공동체의 책임에 대해서 느끼면 좋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