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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strend report]/영화

8인 최후의 결사단

한 남자가 사람들 북적이는 거리를 걸어간다. 공기 중에 감도는 태양 빛으로 보아 곧 저녁이 될 듯하다. 그곳에서 남자는 과거에 알던 한 여인과 마주친다. 한때 부부의 연을 맺었지만 결국 큰 상처를 주고 떠나보냈던 한 여인을. 그립도록 사무치던 그녀를 만난 순간에, 어쩌면 남자는 생의 저녁을 향해 걷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제 곧 암살 위기에 처한 혁명가를 위해 목숨을 걸어야 하기 때문이다. 거리에서 자객들과 사투를 벌이며 다가온 최후의 순간, 남자는 그토록 그리워하던 여인과 자신의 딸을 그리면서 눈을 감는다. 그런데...왜 죽어야 하는 거지?

이번이 제 4회인 아시아 영화상(Asian Film Awards)에서 봉준호 감독의 <마더>와 함께 최다부문 후보에 오른 <8인 : 최후의 결사단>. 열강들의 식민지 위협 속에 봉건왕조의 타파와 민주정부를 꿈꾼 혁명가 손문이 등장한다. 그러나 이 영화는 그의 일대기가 아니다. 먼저 언급한 남자의 이야기도 아니다.

황실의 몰락을 부르며 근대화 정부를 세우는 계기가 되었던 중국 신해혁명이 실행되기 몇 달 전이 바로 영화의 시간적 배경. 중국 각지의 혁명가들과 전략회의가 열리는 홍콩으로 손문이 방문할 예정이다.

청나라 황실에서는 그를 암살하기 위해 수백 명의 자객들을 급파하기 시작하고. 중국 내 정치문제에 끼어들기 꺼려한 영국정부가 경찰들에게 관여하지 말 것을 주문하자 암살자들은 저잣거리에서 태연자약하게 임무를 수행하기 시작한다.

이에 맞선 혁명동맹회 당원들은 손문을 보호하기 위해 스스로 암살의 표적이 되는 위험한 작전을 구상하는데. 영화는 여기에 참여하는 군상들의 이야기다. 그들 가운데엔 과거의 상처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비굴하게 삶을 이어오던 남자와 걸인도 있으며 결혼을 앞둔 청년이나 한 집안의 유일한 자녀도 있다. 각양각색 사람들의 목숨을 건 임무가 시작되고. 민족을 배신한 외세의 앞잡이라 비난받던 경찰서장 또한 이 대열에 합류하며 스크린 속 민족주의는 정점으로 치닫기 시작한다. 당시 영국의 식민지였던 홍콩을 배경으로 중국인들의 민족적 자존심과 저항, 변화를 꿈꾸며 단결하는 모습들이 담겨있는 것이다.

흥미로운 점은 손문을 보호하기 위해 나선 이들 가운데는 혁명사상과 담을 쌓고 지내온 사람이 대부분이라는 것이다. 이들은 왜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을 위해 목숨까지 내걸었나. 영화를 보는 내내 답답함과 불편을 지울 수 없었다. 다소 지루한 전반부를 지나 긴박한 실시간 액션이 펼쳐지는 후반부를 맘 편히 감상하기란 쉽지 않다. 개연성도 없이 단 한 명의 인물을 위해 평범한 사람들이 무참히 죽어간다는 것에 공감하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더욱이 그 보호해야 될 인물이 민중을 위한 평등정치를 실현하겠다는 사람이라니. 세상에 귀하지 않은 목숨이 없건만 저들은 도대체 왜 죽어야 한단 말인가.

물론 영화에 등장하는 결사단은 픽션이다. 가공의 설정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누가 미쳤다고 생판 모르는 사람 지키면서 대신 죽어주겠나. 결국 있지도 않은 이야기가 성립할 수 있도록 끌어오는 것이 영웅주의요 민족주의다. 유행도 한참 지나 이제는 먼지 풀풀 날리고 있을 철지난 감상주의 때문에 뒷목 부여잡기엔 이르다. 이 영화가 홍콩에서 만들어졌다는 사실이 기가 막히다. 중국에서 애국심을 고취시키기 위해 <건국대업>같은 공산당 선전 영화를 만들다 보니 여기에 질세라 그러는 것인가.

 

 
  
1:1 사이즈로 최조 재현이라는 1906년 당시의 홍콩 거리.
ⓒ CJ엔터테인먼트
 

억눌린 일상의 스트레스를 참신한 액션으로 화끈하게 날려줄 것 같았던 견자단은 안쓰러울 정도로 얻어터지기 일쑤고. 무간도의 카리스마는 간데없이 우스꽝스러운 콧수염 달고 나타난 증지위가 날리는 초반 썩소는 팬들을 안타깝게 만들 뿐. 등장인물들의 비하인드 스토리도 간단한 대사로 설명하는 산만한 느낌의 진행이 이어진다. 그 이름만으로도 영화를 말해주는 배우 견자단을 빼고 나면 다들 수박 겉핥기식의 공감대만 형성할 뿐이고. 여명의 경우엔 알아볼 수도 없는 몰골로 잠깐씩 등장하다가 죽기 직전에야 이 사람이 누구였다는 것을 알 수 있을 정도니.

이름만으로도 아우라가 상당한 배우들이 이런 식으로 등장하면서 한 사람의 '영웅' 앞에서는 개인의 삶도 보잘것없는 것처럼 느껴져 씁쓸할 뿐이다. 누군가는 혁명이 이뤄질 경우 다수의 평등이 실현되므로 희생 즘은 각오해야 한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러나 지도자 한 사람 없다고 무너질 혁명이라면 그것은 개인의 야망에 불과하지 않을까. <8인 : 최후의 결사단>에 담긴 혁명은 그 시절의 망령일 뿐이다.

얼마 전 오픈 베타 서비스를 시작한 중국게임 <적벽 온라인>처럼 '나라를 위해 단결하라'는 메시지까지 담긴 <8인 : 최후의 결사단>. 엄청난 물량 공세로 그 당시 거리를 그대로 재현해낸 세트 정도는 상을 받을만한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최근 들어 지배층의 이익을 위해 다수를 희생시키며 이것에 정당성을 부여하려는 내용의 콘텐츠들이 중화권에서 하나 둘 모습을 드러내고 있어 경악과 우려를 금할 수 없다. 중국이건 홍콩이건 지금의 시대에서 변화를 꿈꾸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방식이 생명의 가치를 무시한 폭력과 실패로 얼룩진 과거의 것을 재현하는 것이라면 곤란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