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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strend report]/newstrend report

소말리아 해적과 AK47, 범죄국가의 탄생

소말리아 해적과 AK47

소말리아 해적이 우리나라에 크게 알려진 것은 지난해 삼호 주얼리호 사건이 계기가 아니었나 싶다. 당시 아덴만 여명 구출작전이 크게 화제가 됐었고, 한국군의 뛰어난 작전과 성과 역시 국민적인 칭찬을 받았다.

그런데 한국인 4명이 소말리아 해적에 피랍된 지 14개월째에 접어드는데도 감감 무소식인 사건이 있다. MT 제미니호 선장과 선원들의 이야기다.

아덴만 구출작전 성공 후인 2011430, 이들이 타고 있던 선박은 케냐 인근 몸바사항 남동쪽 193마일 해상에서 해적들에게 납치 됐다. 당시 한국인 선장 1명과 선원 24(3명은 한국인)이 타고 있었는데, 해적들은 피랍 7개월이 지나자 외국 선원 21명을 풀어줬다.

사진) 해적들에게 납치된 MT 제미니호 선장과 선원들. 해적들이 직접 찍은 사진으로 현재 인터넷에 올라와 있다.

외교통상부에 따르면 한국인만 인질로 삼은 해적들은, 아덴만 여명 당시 잡혀간 소말리아 해적들의 석방과, 사살된 동료들에 대해 보상을 요구했다고 한다. 그리고 언론에서는 더 이상 이들과 관련된 보도가 나오지 않게 됐다.

하지만 시사IN 이번호가 이들의 소식을 표지기사로 다뤘다. 외교부가 협상에 불리할 수 있다는 이유로 국내 언론에 보도유예(엠바고)를 요청했기 때문인데, 그 사이 상당한 시간이 흐르면서 선원 1명의 연락이 몇 달 동안 두절된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현재로서는 해적들에게 납치된 한국인 선원들의 생사도 불분명한 상황인 것 같다. 외교부가 협상을 이유로 언론들에게 보도유예를 요청하고 그것을 기자들이 받아들인 사이에, 상황은 더욱 악화돼 있었다. 소말리아 해적들의 소식을 전하는 소말리아 리포트는 한국인 4명 가운데 2명의 건강 상태가 좋지 못하다는 사실을 밝힌 바도 있다.

사진) 소말리아 해적이 표지모델인 시사IN 259호

그런데 소말리아 해적의 모습이 실린 시사IN 259호 표지를 보니 낯익은 것이 하나 보인다. 해적이 어깨에 대고 있는 무기, 흔히 테러리스트의 총이라는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AK47이다.

AK47, 전 세계로 확산된 공포의 총구

소말리아 해적의 역사는 생각보다 오래됐다. 1990년대 초 시작된 소말리아 내전으로 정부의 통제력이 상실된 상태에서 나타나기 시작했으니 말이다. 그 혼란의 중심에는 아이들까지 반정부 게릴라로 만든 자동소총 AK47이 있었다.

AK47은 분쟁지역이라면 전 세계 어디서든 쉽게 찾아 볼 수 있는 총이다. 이유는 값이 싸면서도 잔고장이 거의 없을 정도로 튼튼하고 별다른 손질도 필요하지 않으며 조작법이 쉽기 때문이다. 모래나 습기 등에 영향을 받아 부품 분해 후 손질 등 정교한 관리가 필요한 일반적인 소총들과는 완전히 다른 특성을 가지고 있다. 실제로 베트남전 당시 M16을 사용하던 미군들은 습기 때문에 총이 고장 나자 베트남군으로부터 AK47을 뺏어 쓰기도 했다.

이 정도로 튼튼하면서도 쉽고 강력한 살상력을 가진 자동소총 AK472차 대전 가운데 탄생한 총이다. 구소련의 설계기사 미하일 칼라시니코프가 독일군의 MP 단기관총을 제압하기 위해 더욱 강력한 무기를 구상하며 만들었다고 한다.

하지만 개발 후 퍼져나간 이 총은 현재 1억 정 가량이 전 세계에 널려 있으며, 지금도 게릴라들을 고객으로 삼은 무기업자와 제조회사의 거래가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세계적으로 포화 상태인 무기인데도 하루 최대 생산 가능물량은 14000천정에 달하는 것이 AK47이다.

식민지 역사 후 독재정권의 부패, 미국과 소련의 군사개입

그렇다면 소말리아에는 어떻게 AK47이 넘쳐나게 됐을까. 그 배경에는 19세기 말, 영국과 프랑스 및 이탈리아로 인해 3개 지역으로 나뉜 혼란스러운 식민지 역사와 더불어 쿠데타 뒤 이어진 독재로 들끓게 된 부정부패 등이 자리 잡고 있다.

'아프리카의 뿔'로 불리는 소말리아. (자료 : 포털 다음 해외정보)

또한 냉전시대 당시 소련은
, 인도양을 향해 돌출된 지형적 특성으로 아프리카의 뿔로 불리는 소말리아를 항만으로 이용하기 위해 독재자의 정부에 로켓포와 10만정이 넘는 AK47을 지원했다.

이웃나라인 에티오피아와 영토 분쟁이 생겼을 때는 미국이 군사지원으로 소말리아를 도왔고 그 대가로 항만을 사용했다. 소말리아 앞 바다는 지중해로부터 수에즈 운하를 빠져나가 인도양으로 향하는 배가 반드시 들릴 수밖에 없는 위치였기 때문이다.

그러는 사이 국가는 제대로 된 정책이나 사회 안전망을 찾아볼 수 없는 상태로 변했고 불만을 품은 각 부족들이 무장봉기하면서 내전이 발생한 것이다. 결국 1991년 정부는 붕괴됐고 주민들은 무법천지에서 자신들을 지키기 위한 방편으로 무기고를 습격해 각 가정마다 AK 47을 손에 넣었다.

영화 '블랙호크 다운' 가운데 한 장면. UN 평화유지작전으로 소말리아의 수도 모가디슈에 파견된 최정예 미군 부대원들이 민병대에 의해 공습당하면서 19명의 사상자를 냈다. ⓒ소니픽처스

1992년 국제연합이 치안을 유지하기 위해 다국적군을 파견하기도 했지만, 미군의 블랙호크 헬기가 격추된 사건 이후 그 어떤 나라도 소말리아의 평화를 유지하는 것을 포기해 버렸다. 이렇게 무정부 상태를 극복할 희망이 보이지 않자 알카에다까지 이곳을 거점으로 삼으려는 움직임을 보일 정도였다.

현재 소말리아는 과도정부가 들어서 있지만 마땅한 경제기반이 없어 해적질을 국가사업으로 장려하는 눈치다. 실제로 아흐마드 대통령은 해적 우두머리에게 직접 면책용 외교 여권을 발급해 전 세계 어디서든 그가 체포되지 않도록 도왔다. 각 나라의 인질을 잡고 받아낸 몸값으로 경제가 굴러가는 범죄국가를 만들어 가고 있는 것이다.

*참고자료 : 역사를 바꾼 총 AK47 (마쓰모토 진이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