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newstrend report]/책

좌우파 모두에게 비난받은 문제의 소설 <의심스러운 싸움>


노벨상 수상 작가 존 스타인벡의 문제작!

책을 읽다 배가 고파진 나는 문득 구운 쇠고기와 콩 요리가 먹고 싶다는 충동을 느꼈다. 사과농장 파업 시위가 진행 중인 1930년대 노동자들의 천막촌을 중심으로 이야기에 빠져들다 보면 어느새 그들과 함께 웃고 분노하며 갈등하는 자신을 돌아볼 수 있다. 부유한 지주들이 식량을 차단해서 굶주리던 파업 노동자들이 동조자로부터 소고기와 아욱콩을 얻어와 기뻐하던 모습을 어찌 잊을 수 있을까. 땀 흘리던 삶의 현장 속엔 진한 피가 흐르고 분노가 꿈틀거린다. 그 한 가운데엔 맥과 짐이라는 두 남자가 있다. 사실 이들은 캘리포니아의 농장 지대로 파견된 공산당원들이다.

불합리한 임금 삭감으로 드러나는 지배층의 착취와 지저분한 생활환경 등에 불만을 품은 떠돌이 노동자들이 파업을 일으키도록 선동하는 것이 목적인 두 사람. 골수 공산당원인 맥과 달리 이제 막 당에 가입한 짐은 그에게서 현장 공작과 파업 선동 기술을 전수 받는다. 그러나 상황은 갈수록 불리해지고 중간 중간 타협의 순간도 찾아오지만 만족스럽지 못한 절충안과 끝까지 투쟁을 부르짖는 과격 골수파인 맥의 주도로 상황은 점점 극한으로 치닫는다.

부유층 지주들은 경찰과 언론을 매수하고 총을 든 무법자들인 자경단을 투입한다. 이들과의 대립으로 분노와 살인, 방화와 음모가 진행되면서 악착같은 삶을 살아내야 하는 노동자들의 모습이 펼쳐지는데. 과연 누구를 위해서 이 고난과 슬픔을 겪어야 하는가? 피 흘리고 쓰러져 가다 결국 쏟아지는 총탄 속에서 죽음에 이르더라도 이 파업을 계속해야 하는가. 이것이 투쟁이란 말인가. 과연 누구를 위한?

불합리한 현실에도 불구하고 노동자들은 고통뿐인 투쟁을 점점 그만두고 싶어진다. 하지만 명분과 사상에 속박되어 희생을 강요하는 맥은 노동자들을 선동해대고 개개인이 아닌 군중으로 뭉쳐진 이들은 짐승과도 같은 광기를 폭발시켜간다.

후에 분노의 포도를 집필하고 불만의 겨울이란 소설로 노벨 문학상을 받게 되는 존 스타인벡의 이 소설은 출간 당시 좌 우파 양쪽으로부터 혹독한 비난을 받아야 했다. 좌파는 소설 속 공산당의 이미지에 불편함을 느꼈으며, 우파는 빨갱이 소설이라며 맹비난을 퍼부었다. 그러나 어느 한쪽에도 치우침 없이 인간과 집단, 사상과 현실의 갈등으로 빚어지는 아이러니를 포착해낸 작가의 진실성은 크게 빛을 발한다. 물론 파업 노동자들을 중심으로 지배층인 농장주들의 입장은 부각되지 못하지만 어느 쪽도 편들지 않는 작가만의 시선이 살아있다.

미국 리얼리즘 문학의 걸작이라는 본 소설의 비정한 결말을 보면서 책장을 덮게 되면 의심스러운 싸움이란 제목을 통해 다양한 생각과 감정들을 느낄 수 있다. 이들의 투쟁이 결국 효과가 있을 것인지-한 세기가 지나도록 현실은 여전한데도-, 현실을 바꾸지 못하면서 반복되는 투쟁들이 결국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인지. 절대적인 명분이나 이상을 실천한다는 인간들도 의심스럽진 않은지-복숭아와 정어리 통조림이 대표적인 예-. 결국 절대 권력은 썩는다던 비트겐슈타인과 헤드윅 모친의 설파가 떠오르기도 하지만 깊이 있고 강렬한 문장 한 줄 한 줄을 지나오면서 평생 잊지 못할 인상적인 독서 체험을 한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