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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strend report]/책

고달픈 삶을 초월한 예술의 구원 - 블루스맨



누군가 신도 없으며 예술 또한 인간을 구원할 수 없다고 했다. 그러나 인생은 짧고 불꽃으로 타올라 사라져 가는 것. 신에 대한 믿음과 희망, 시간을 초월하여 숨 쉬는 예술은 남겨진 누군가의 삶을 구원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작품이 여기 있다.

미국에서 2006년 출판되어 평단과 독자들로부터 무수한 찬사를 받은 그래픽 노블 <블루스맨>. 인종차별이 극심하던 시절 떠돌이 흑인 뮤지션의 굴곡진 삶을 통해 독자를 섬세한 감정의 파동 속으로 밀어 넣으며 따스한 위로와 울림을 전하고 있는 작품.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주인공인 램 테일러. 그는 독실한 기독교 성직자의 아들로 전도사가 되었지만 어린 시절 만났던 맹인 기타리스트의 강렬한 인상 때문에 결국 블루스 뮤지션이 되고 만다. 나이 많은 피아노맨과 함께 짝을 이루어 미국 전역을 떠도는 연주생활. 흑인이면서 블루스맨이라는 삶은 어떠한 것일까.

작품을 보면 알 수 있듯 그것은 고통과 고독의 시간. 원래 블루스 음악이란 흑인 노예들의 노동가였다. 고통스러울 정도의 노동과 인종차별, 현실의 고난과 빈곤 속에서도 삶의 끈을 붙잡게 해주던 음악에는 그들의 한과 절규가 눈물처럼 고여 금방이라도 흘러넘칠 듯하다. 그러한 음악을 연주하는 뮤지션들 가운데는 자신의 곡을 알리기 위해 떠돌이가 되는 사람도 있었고 이것이 유일한 밥벌이가 되어 주었다는 고달픈 현실.

발길 닿는 곳으로 향하며 분위기 있는 술집에서 연주하는 그들은 낭만적이며 자유로워 보이기도 했지만 이 때문에 편견과 시기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백인들은 물론 음악을 통해 고통의 피난처를 제공받던 같은 흑인들에게도.

한곳에 정착하지 못하고 심신이 피곤으로 얼룩지는 생활을 이어가던 램과 피아노맨. 어느 날 그들이 도착한 마을은 운명의 장난인 듯 '희망'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있었다. 마침 처음 들른 식당의 주인은 이들이 사악한 음악을 전파한다면서 비난하기 시작하고. 식당 안에 가득한 증오와 적개심을 재치 있는 성경구절들로 무마하며 공짜 식사까지 제공받는 램 일행. 그런데, 정말로 희망처럼 이들에게 기회가 찾아오기 시작한다. 술집에서 연주하던 중 유명한 레코드 회사 관계자의 마음에 들어 노래를 녹음할 날짜가 잡힌 것이다.

들뜬 램과 피아노맨. 그들은 술집에서 만난 흑인 여인들과 어울리게 되고 그녀들의 집으로 동행한다. 그리고 치명적인 사건에 휘말린다. 피아노맨과 사랑을 나누려던 여인을 찾아 백인 남자가 갑자기 들이닥친 것이다. 떠나간 여인에 대한 증오는 우발적인 살인까지 불러와 순식간에 참극이 벌어지고. 간신히 피한 램은 피부색을 이유로 살인자라는 누명을 뒤집어 쓴 채 도망자가 되어 쫓기기 시작하는데.

여기에 또 다른 인물들이 갈등을 형성하며 등장한다. 바로 추격자들. 흑인에 대한 차별과 증오로 얼룩진 채 자신의 아들을 살해한 깜둥이를 응징하겠다고 나서는 은퇴한 백인 대령. 그리고 지역사회에 만연한 인종차별에 맞서며 정의를 구현하려는 양심적인 보안관. 이들이 긴장을 조성하며 서로가 먼저 램을 찾기 위해 나선다.

보안관이 원하는 것은 복수로 얼룩진 또 다른 살인이 아닌 명확한 진상과 배심원들의 현명한 판결. 하지만 대령이 지역사회의 유지로서 막강한 권력까지 휘두르고 있어 수사 초반부터 힘겨운 싸움을 벌여간다. 인간에 대한 예의도 없는 지옥 같은 곳에서 법마저 차별 앞에 힘을 잃은 상황, 이들이 도달하게 될 곳은 어디일까.

책을 펼치면 그래픽 노블이라는 수식어와는 다르게 판화로 찍은 것 같은 흑백의 그림들을 보면서 당황할지도 모른다. 실제로 흑인들의 노동가인 블루스를 중심에 둔 이 작품의 그림들은 어찌 보면 민중 만화를 보는 느낌까지 들게 만든다. 그러나 감동적인 클라이맥스와 결말의 반전까지 도달하다보면 그림체를 통해서도 깊은 울림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신이 있다면 왜 이리도 삶이 불평등한 것일까. 불행 속에서도 희망은 있는 것일까. 살아간다는 것의 의미는 무엇일까. 그대, 주저앉아 울고 싶을 때 이 책을 읽어 보시라.

<덧붙이는 글>

이번에 국내 독자들에게 선보인 초판 번역본을 보면 무성의하다 싶을 정도의 오역이 눈에 띄는 것이 흠이다. 번역이 매끄럽지 못한 부분들이 상당수 있다. 예를 들어 128페이지에 등장하는 (유명한 명곡인) "The House Of The Rising Sun"의 가사 번역은 너무도 엉뚱해서 작품의 감동까지 갉아먹고 있다. 그 부분의 원래 가사는 주인공이 처한 상황과 절묘하게 어우러지면서 독자의 가슴을 파고드는 것이어야 한다. 음악이 궁금한 독자들은 그루브 샤크(http://listen.grooveshark.com)에 접속해서 The Animals의 곡을 들어보기 바란다. 작품이 걸작이라는 칭송을 듣는 만큼 번역이 수정된 개정판이 나오길 바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