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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strend report]/생활·문화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주의-약간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1차 대전이 끝나는 기쁨의 날, 한 아이가 버려졌습니다. 출산 후 죽어버린 친 어머니는 아이를 보살펴 달라는 유언을 남겼지만 결국 아버지의 손으로 버려지고 말았죠. 이름도 없이 버려진 그 아이를 거두어 준 사람은 양로원을 관리하는 한 흑인 여성. 그녀가 계단에 버려진 포대기를 들추며 놀란 것은 아이가 백인이기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아이는 늙어 있었습니다. 마치 죽음을 앞 둔 노인처럼.

놀라운 컨셉의 이 영화는 피츠제럴드가 쓴 동명의 단편 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습니다. 소설을 각색한 로빈 스위코드가 초고를 끝낸 무렵은 1990년 1월. 이후 십년 이상 묵혀가며 열 번이 넘는 퇴고를 거듭하다가 2006년 무렵이 되어서야 촬영에 들어간 작품입니다.

드라마와 로맨스 장르의 쟁쟁한 감독들을 물리치고 메가폰을 잡은 사람은 바로 데이빗 핀처. <세븐>과 <파이트 클럽>등 작품성 있는 스릴러들을 연출해온 그가 감독이 된 것입니다. 당시엔 정말 의외였죠. 스릴러의 거장이 로맨스 영화의 메가폰을 잡을 줄이야. 그런데 이렇게 결과물이 나왔고 관객의 평가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한 남자의 일생을 격변하는 역사와 함께 반복적인 회상을 통해 보여주는 방식에서 관객들은 <포레스트 검프>를 떠올릴지도 모릅니다. 실제로 그 영화의 각본을 쓴 에릭 로스가 이번 작업에 공동으로 참여했습니다. 저도 두 영화가 상당히 닮았다고 느껴집니다.

그런데 정작 감독은 이렇게 말했네요.

“<포레스트 검프>의 경우 평범한 사람이 특별한 상황들에 적응해 간다. 하지만 이 영화는 특별한 남자가 평범한 일상들에 적응해 가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두둥~ 데이빗 핀처의 말을 들으니 갸우뚱하네요. 과연 그런가요? 사실 검프라는 인물도 특이한 인물이죠. 뭐가 평범합니까? 다리가 불편한 아이큐 75의 세상 물정 모르는 너무나 순수한 인물로 나오는데. 다만 벤자민이 워낙 보통 인간과는 다른 삶을 살아가는지라 비교가 되어 그렇게 보일 뿐이죠. 더군다나 어린 시절에 선원이 되어 배를 타다가 간만에 육지에 올라온 날은 매음굴로 직행, 환락의 쾌감을 맛보며 남의 애인과 사랑을 나누고 2차 대전에 참전, 총알 세례를 뚫고 잠수함을 두 동강 내는 혁혁한 전과를 세우는 삶을 평범하다 할 수 있을까요?

저는 이 영화가 기나긴 세월의 장고 끝에 결국 안전한 선택을 했다고 여겨집니다. 상영시간 166분이 길긴 하지만 흥미를 자극하는 독특한 컨셉을 판에 박은 듯 전형적인 할리우드 메인스트림 형식으로 완성했습니다. 초특급 주연 배우는 물론 의상, 미술, 배경, 음악, 편집 등. 평론가들이 만족스러운 반응을 보인 것은 당연한 겁니다. 할리우드의 자랑인 전형적인 고전적 스토리에 A급 기술들이 총집합된 ‘웰 메이드’ 영화라고 생각하겠죠. 실제로 완성도 높게 잘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포레스트 검프>가 떠오르는 것은 어쩔 수 없네요. 더군다나 선량함과 불굴의 의지로 관객에게 희망과 용기를 줬던 검프의 모습에 비해 벤자민은 많은 고민을 남깁니다. 하긴 두 작품을 보고 드는 생각이 다르므로 이 영화가 평가 절하될 이유는 없겠지만.

너무나 기대가 컷던 탓인지 166분 동안의 시간마저도 거꾸로 흐르게 만드는 대단한 작품이었습니다. 바로 예고편을 보고 흥미를 느끼던 순간으로 말이죠. 물론 이 영화에 장점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는 인생에서의 만남과 인연들, 헤어짐 대한 이야기를 회상구조를 통해 보여주고 있습니다. 영화는 그 중심에서 서로 다른 사람들의 사랑을 탐구하고 있고요.

탄생과 동시에 죽음의 모습을 한 기형적인 성장과정을 보여주는 벤자민은 굉장히 외로웠을 지도 모릅니다. 이렇게 특이한 사람이 만약 사랑이 없었더라면 삶을 살아낼 수 있었을까요?

결국 지독한 외로움 속에 죽어버렸을 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세상이 괴물이라고 부른 것을 원망하며 끔찍한 살인마가 됐을 지도 모르죠. 쥐스킨트의 소설을 영화로 만든 <향수>의 주인공이 사랑 대신 괴물취급을 받으면서 결국 살인마가 되어 버리듯 말이죠. 하지만 남과 다른 그가 삶을 살아낼 수 있었던 것은 주변의 사랑 덕분이었습니다.


탄생과 동시에 의사로부터 곧 죽을 운명이라는 선고를 받지만 친어머니가 자신의 생명을 내어 주면서 대신 하늘나라로 가지요. 이것이 시작이었습니다. 인종도 다른데다 기이한 모습까지 갖춘 아이를 보며 신께서 선물하신 기적이라 여긴 양어머니. 그녀의 조건 없는 사랑은 충분히 감동적입니다.

그렇다면 연인과의 사랑은 어떨까요? 벤자민의 경우 독특한 외모만큼이나 다양한 여성들을 만납니다. 하지만 스쳐 지나는 인연일 뿐. 죽음의 순간까지 함께 있어준 사람은 바로 어릴 적부터 인연을 맺은 데이지입니다.


그런데 아쉽게도 두 연인이 함께하기 위해선 조건이 있었던 것 같아요. 서로 비슷한 연령대처럼 보이는 인생의 중간 지점에서 사랑을 시작한 점, 갈수록 어려지는 자신을 발견한 벤자민이 선택한 행동 등을 볼 때, 두 사람이 함께 있기 위해선 넘어야할 장벽들이 상당히 많았습니다. 그런데 두 사람의 선택은 너무나 현실적이네요.

사실 결말부에서 벤자민의 체형이 정말로 아이로 변해가는 모습을 보고 저는 조금 이상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오장육부가 다 성장한 마당에 체형이 저렇게까지 줄어들 수 있을까 싶었던 것이죠.

이러한 생각을 하게 된 데에는 영화가 그 길고 긴 상영시간 동안 너무나 현실적으로 진행됐기 때문입니다. 화면 또한 바이퍼 카메라로 촬영해서 필름 카메라에 비해 좀 더 현실적인 질감이 느껴지고요. 반면 엔딩을 앞둔 후반부에서는 판타지적 감성이 두드러지니 조금 이질감이 생긴 거죠.

이 영화가 사랑을 탐구하는 방식은 어쩌면 독이 될 수도 약이 될 수도 있습니다. 행위를 통한 기쁨과 상대방의 자유를 인정하는 존중의 태도에 일단 지지를 보냅니다만. 과연 그렇게 성숙한 사랑을 12세 관람가 등급의 어린 관객들이 올바로 이해할 수 있을 런지는 약간 걱정스럽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