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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strend report]/newstrend report

여의도 칼부림, 증오와 절망 속에 보인 희망

사진) 여의도 칼부림 현장, 22일 오후 7시 16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한 제과점 거리에서 김모씨가 전직장 동료들과 행인들을 상대로 칼을 휘둘러 4명의 부상자가 발생했다. 이미지 출처 : 노컷뉴스(사진 조은정 기자)

뉴스 트렌드 리포트는 여의도 칼부림 사건이 현재 대한민국 사회문제는 물론 해법까지 모두 보여준 상징적인 요소가 많다고 판단합니다. 무엇 때문일까요?

일단 경찰에 따르면 여의도 칼부림(흉기난동)을 일으킨 김모씨가 애초엔 직장동료 6명을 살해할 계획이었다고 합니다. 피의자 김씨에 따르면, 2년 전 금융권에 종사하면서 스카웃 제의를 받고 부팀장까지 승진했으나 동료들로부터 시기의 대상이 됐던 듯합니다. 실적이 떨어지자 곧바로 앞가림도 못한다”, “월급만 많이 가져간다는 식의 험담에 시달렸다는군요. 쉽게 말하면 직장 내 괴롭힘을 당했다는 겁니다.

무한경쟁 시대, 증오와 절망을 낳았다

학교나 직장 등 단체 안에서 특정인을 괴롭히는 현상은 예전부터 있었지만, 지난해 말 중·고등학교에서 피해자들의 자살 사건이 연달아 벌어지며 큰 사회문제로 인식되기 시작했습니다.

1월 초에는 직장에도 집단 괴롭힘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보도되기도 했습니다. 당시 설문조사에 따르면, 직장인 2975명을 대상으로 귀하가 재직 중인 직장에 왕따 문제가 있습니까?’라고 질문하자 45%있다고 답했다는 겁니다.

주목할 만한 것은 직장 내 왕따 문제에 대해 절반 이상인 61.3%우려하거나 매우 심각한 수준이라고 답해, ‘전혀 문제되지 않는 수준’(2.1%)이라는 응답보다 무려 30배나 많은 응답률을 보였다는 사실입니다. 어쩌면 여의도 칼부림 사건은 미리 예견된 비극이었을지도 모릅니다.

최근에는 연예계 걸 그룹 안에서의 왕따 문제가 크게 소란을 일으키며, 사람들로부터 런던 올림픽 못지않은 집중조명을 받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일련의 사건들은 몇 가지 공통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선 대가족 시대가 막을 내리고 공동체 의식이 무너지면서 사회 구성원들 사이에 파편화 현상이 나타난 시대를 배경으로 한다는 점.

사진) 여의도 칼부림 피의자 김모씨의 거처는 고시원이었다. 책장에는 '돈 걱정 없는 노후 30년'이라는 책이 있었다. 이미지 출처 : 한겨레(김지훈, 박아름 기자)
 
그리고 모두 다 무한경쟁에 내몰려 성적, 실적, 인기 등 결과를 얻기 위해 경쟁에 몰두하는 사회적 피곤함이 누적된 상황에서 발생한 점입니다.

여의도 칼부림 현장과 무차별 범죄들, 어떻게 희망을 말하나

하지만 이러한 일련의 사건들이 우리사회 절망의 증거만 되는 것일까요? 그렇지 않다고 봅니다.

우선 많은 사람들이 이것을 심각한 문제로 인식하고 있다는 점을 근거로 들 수 있습니다. 지난달 SBS 힐링캠프에 출연한 안철수 박사는 문제에 대한 해결은 쉽다. 다만 그것을 문제라고 공감하는 과정이 어렵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이 말에 비추어 보면 심각한 사회문제에 대해 머리를 맞댄 우리들은 비로소 해결책에 가까워진 상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연달아 발생하는 흉악범죄를 두고 언론은 수년 간 묻지마라는 단어를 붙여 왔지만 이제야 사회 전반적으로 그 원인과 해법을 진지하게 고민할 수 있게 됐다는 것이죠.

사진) SBS 8시 뉴스는 22일 첫 소식들로 사회전반의 무차별 범죄를 다루면서, 더 이상 사태를 방치해선 안 되며 대책을 마련하기 위해 여론이 필요하다고 호소 했다. 방송화면 캡처.

묻지마가 아니라 물어야 될이유가 있었다는 겁니다. 공동체 파편화와 배려의 실종, 타인에 대한 무관심 등으로 전개된 무한경쟁 사회의 부작용과 안전망의 부재에 상당수 시민들이 공감을 나타내는 모습을 최근에 봅니다.

또한 꺾일 줄 모르는 안철수 열풍도 상당히 긍정적인 신호입니다. 안철수라는 사람은 성적, 실적, 인기 등 돈과 관련된 결과들에 주목할 것이 아니라, 하고 싶은 일을 정직하게 열심히 하는 것이 목적이라고 일깨워준 사람입니다. 물질주의 시대에서 공동체의 가치가 힘을 잃고 본말이 전도됐다는 것을 일깨워주는 아이콘이 대중의 지지를 받고 있다는 점은 상당히 고무적입니다.

사진) SBS 힐링캠프에 출연한 안철수 박사(서울대학교 융합과학기술대학원 원장, 안랩 의장, CLO). 방송화면 캡처.

마지막으로 사건이 벌어진 현장에는 용감한 시민들이 있었다는 점입니다. 이들은 범인을 막아서고 피해자들을 구조하려 노력했는데, 그 가운데 새누리당 당직자와 촛불시위 중인 쌍용차 해고 노동자가 함께 있었습니다. 정치적으로 좌우가 갈려 서로를 적대시해왔으면서도 정의를 위해 함께 뭉친 이들의 모습 또한 굉장히 놀랍고 상징적인 희망의 증거가 됩니다.

저는 법이란 것은 사회를 유지하는 최소한의 원칙이라고 생각합니다. 진정 살기 좋고 건강한 사회란 구성원들이 상식과 정의를 지키며 공동체를 떠받치는 보이지 않는 기둥이 될 때 튼튼하게 유지될 수 있습니다. 증오와 절망이 칼을 휘두른 그 현장에서, 한편으로는 우리 사회의 미래에 대한 희망을 목격할 수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