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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strend report]/영화

셰임(Shame, 2011), 부끄러운 줄 모르는 사람들

주의 : 스포일러 있습니다.

작가의 시각에서 본다면 셰임은 올 상반기 관람한 국내 개봉작들 가운데 단연 최고였다. 영화가 섹스를 통해 은유하는 우리 사회의 모습은 제목처럼 부끄럽기 그지없어 구성원인 관객 스스로를 돌아보게 만든다. 그렇다고 다양한 사례들을 가지고 관객을 훈계하려 드는 것은 아니며, 세련된 스토리텔링을 통해 전체적인 의미를 떠올리게 만드는 수법이 매끄럽다.

영화 셰임은 관음증, 패티쉬부터 시작해서 자위와 동성애, 난교에 이르기까지 섹스와 관련된 온갖 소재를 늘어놓으며 전개된다. 그런데 섹스란 것이 무엇인가.

영화 셰임(Shame, 2011),  포스터

짐승도 섹스를 하고 꽃도 섹스를 한다. 섹스의 기본적인 의미는 후손을 만들기 위한 번식이다. 하지만 인간은 번식이 아닌 즐거움을 위해서도 섹스를 할 수 있는 존재다. 영화 속에서 섹스는 번식이라는 기본적인 의미부터 쾌락까지 확장된 다양성을 내포하고 있다.

물론 셰임이 집중하는 소재는 쾌락으로서의 섹스다. 번식 목적의 섹스가 종의 생존을 위한 필수적인 요소라면 쾌락 목적의 행위는 선택사항일 뿐이다. 그런데 영화가 폭로하는 일상에서의 섹스는 선택사항이 주된 목적이 되어버린 본말전도의 행위다.

영화 셰임(Shame, 2011) 가운데.

예를 들어 주인공의 상사는 한 가정의 가장이다. 아내와 아이가 있는데도 틈틈이 여자들을 꼬시러 다닌다. 그럴 필요가 없는데도 주어진 것에 만족하지 못하는 것이다.

주인공 역시 주기적으로 자위를 하고 콜걸을 만나며 음란물에 중독된 삶을 살아간다. 지하철에서 눈이 마주친 유부녀에게 성욕을 느끼고 쫓아가는 어이없는 행동까지 하기에 이른다. 하지만 이것이 다가 아니다. 후반부에 이를수록 그의 쾌락에 대한 탐닉은 수위를 높여간다.

하지만 그 와중에 주인공의 동생이 나타나 그의 일상을 방해하기 시작한다. 유일한 가족임을 내세워 갑자기 찾아와 비밀스러운 사생활을 허물어 버리고 은밀히 즐길 시간을 빼앗는다.

이러한 변화에 화를 내던 주인공은 회사 동료와 정상적인 만남을 시작해보려는 노력도 하지만 쉽게 풀리지 않는다. 더욱이 쾌락을 쫓는 것을 그만둘 수 없어진 주인공은 스스로 가족의 파멸을 초래하기에 이른다.

영화 셰임(Shame, 2011) 한 장면.
 

셰임의 주인공이 벌이가 괜찮은 여피족이라는 설정은 자본을 중심에 두고 살아가는 우리시대 구성원들의 모습을 반영한다. 어느 정도 먹고살면 그걸로 만족할 줄 알아야 하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들처럼 주인공도 필요 없는 쾌락에 매달린다.

하지만 넘치는 것은 모자란 것만 못하다는 경구처럼 그칠 줄 모르는 욕망은 주인공을 더욱 불행하게 만든다.

영화 셰임(Shame, 2011) 엔딩 화면 가운데.
 

엔딩에서 유혹하는 유부녀를 바라보는 주인공의 시선은 어쩌면 부끄러운 줄 모르고 폭주하는 현시대 구성원들에 대한 질책이나 다름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