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정부의 민간인 불법사찰 기사를 보도한 시사IN 238호 표지.
이명박 정권의 민간인 불법사찰이 다시 논란이 되면서 닉슨을 대통령직에서 몰아낸 ‘워터게이트’ 사건을 떠올리는 사람들이 많다.
대수롭지 않은 범죄기사로 치부된 ‘워터게이트’
워터게이트 사건은 1972년 미국 민주당 사무실에 침입한 5명의 괴한들이 체포되면서 처음 언론에 보도되기 시작했다. 당시 6월 17일 아침 ‘워싱턴 포스트’ 편집국장에게 관련 제보가 들어왔으며, 단순한 범죄사건으로 생각한 신문사에서는 사회부 기자들에게 사건을 넘긴다.
하지만 입사 9개월의 신참기자 밥 우드워드가 법정으로 취재를 나가자 이야기가 달라졌다. 우드워드는 괴한 가운데 한 명이 CAI 출신이며 도청장치를 설치하려 했다는 심증을 굳히자 정권차원의 비리일지 모른다는 직감을 얻었다. 다음날 ‘워싱턴 포스트’는 이 사건을 ‘민주당사 도청을 시도한 5명 체포’라는 제목으로 1면에 보도했다.
워싱턴포스트의 워터게이트 관련 보도 가운데 하나. / 이미지 출처 : Nixon's Second Watergate Speech 캡처.
그러나 다른 언론사들은 이 사건을 대수롭지 않은 ‘절도’ 기사 정도로 치부했다. 대표적인 예로 경쟁사인 ‘뉴욕 타임스’는 눈에 잘 띄지도 않는 30면 한쪽 귀퉁이를 통해 관련 사건을 짤막하게 다뤘다.
하지만 신참 기자인 우드워드는 사건 초기부터 백악관이 자신들과의 연관성을 부인했다는 점에서 오히려 의혹을 느끼게 된다. 다른 신문사들이 정부의 말을 그대로 믿는 것과 180도 다른 반응이었다.
당시 대부분의 언론이 ‘닉슨’과 ‘워터게이트’ 사건을 연관 지으려 하지 않았던 이유는 어쩌면 상식적인 것이었다. 사건이 발생했을 당시 재선을 앞둔 ‘닉슨’ 대통령은 여론조사에서 우위를 달리고 있었는데, 그가 굳이 추잡한 일을 벌여 스스로 무덤을 팔정도로 어리석을 것이라고 생각한 기자들이 없었던 것이다.
이런 시각은 ‘워터게이트’ 사건 초기 ‘워싱턴 포스트’의 선배기자들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신참기자 우드스타인과 짝을 이룬 칼 번스타인은 어린 시절 불어 닥친 메카시즘으로 인해 부모가 공산당원이라는 누명을 쓰고 정부의 감시를 받는 것을 목격한 인물이었다. 정권의 폭력으로 굴곡진 성장기를 보내야했던 그는 우드스타인과 마찬가지로 사건을 해명하는 정부의 태도를 보며 의혹을 느꼈다.
취재가 시작되자 위협받은 언론의 자유, 계속되는 정부의 거짓말
두 기자는 함께 짝을 이뤄 ‘워터게이트’ 사건을 파헤치기 시작했다. 곧이어 결정적인 단서들이 발견됐다. 민주당사에 침입한 범인 가운데 한 명의 수첩에서 ‘하워드 헌트’라는 이름과 연락처가 나온 것이다. 두 기자는 그가 닉슨 대통령의 백악관 관계자라는 사실을 밝혀냈다. 또한 범인이 바꾼 수표의 출처가 닉슨의 대선운동본부라는 것을 알아내자, 우드워드와 번스타인은 사건의 배후에 ‘닉슨’ 대통령이 있을 것이라고 확신하게 된다.
그러나 이들의 취재는 관계자들이 위협을 느껴 증언을 꺼리거나, 사건을 은폐하려는 시도가 이어지면서 순조롭게 풀리지 못한다. 유일하게 사건을 비중있게 보도한 ‘워싱턴 포스트’에 대해 정부는 ‘언론의 자유’를 남용하는 무책임하고 편향적인 매체라고 비난했다.
이어 ‘워싱턴 포스트’는 닉슨 정부로부터 세무조사와 사업확장 불허 등의 협박과 위협에 시달리게 된다. 편집부 고위 간부들과 기자들에게는 미행과 도청이 이어졌다. 애초 회의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던 ‘워싱턴 포스트’의 발행인 캐서린 그레이엄도 이러한 닉슨 정부의 압력에 두 기자의 보도가 ‘진실’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영화로 만들어진 워터게이트 사건 '모두가 대통령의 사람들' / 이미지 출처: 워너브라더스
‘워터게이트’가 단순한 사건이 아니며 ‘언론의 자유’와 ‘미래’가 걸린 사안이라는 것을 알게 된 ‘워싱턴 포스트’는 이어지는 위험 속에서도 사건을 끈질기게 파헤치게 된다.
두 기자는 취재과정을 정리해 ‘모두가 대통령의 사람들(All The President's Men)’이란 책을 출판하기도 했는데, 이후 알란 J. 파쿨라 감독에 의해 더스틴 호프먼과 로버트 레드포드가 주연을 맡은 동명의 영화로 만들어졌다.
‘워터게이트’가 닉슨 탄핵을 불러온 이유는?
‘워싱턴 포스트’의 보도가 이어지는 동안 ‘닉슨’은 재선에 성공하게 된다. 하지만 두 기자의 보도는 ‘백악관’을 직접 겨냥하며 더욱 강도를 높이게 된다. 여기에 출판된 책까지 베스트셀러에 올라 다른 언론사들까지 취재에 뛰어들면서, 결국 대통령 탄핵이라는 사태로 이어지게 된 것이다.
두 기자가 ‘워터게이트’ 사건을 다룬 책의 제목을 ‘모두가 대통령의 사람들(All The President's Men)’이라고 붙인 이유는 무엇일까? 사건에 관련된 인물들, 공범들이 모두 대통령과 연관이 있었다는 단순한 뜻이다. 바꿔 말하면 닉슨이 권력을 사적으로 남용했다는 것을 비판하는 동시에, 이들이 진실을 파헤치는 과정이 얼마나 험난했으며 위험했는지를 시사하고 있다.
책이 출판되고 나서 닉슨은 ‘워터게이트’ 말고도 민주당 인사들에 대한 사찰과 무수한 비리들, 이에 대한 거짓말과 은폐 시도 등이 들어나 도저히 버틸 수 없는 상황이 되자 스스로 물러나는 길을 택한다. 탄핵을 피한 것은 그의 마지막 자존심이었다.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에서 작성한 2009년 하명사건 처리부. 하명관서에 'BH(청와대)'라는 문구가 보인다. / 이미지 출처 : 시사IN
여기까지 워터게이트 사건을 정리해 보니 ‘민간인 불법 사찰’은 물론 MB 정부와의 유사점을 너무도 많이 발견하게 된다. ‘한겨레 21’처럼 정권에 비판적인 언론사 기자들에 대한 감시와 탄압은 물론 평범한 시민에 대한 불법적인 사찰 등 권력을 남용한 것은 완전 판박이다.
2010년 처음 수사가 시작된 민간인 불법 사찰 논란의 핵심은, 정권에 비판적인 시각을 가진 국민을 대상으로 국무총리실이 영장도 없이 압수수색을 자행하며 협박을 일삼았다는 것이 아니다.
사적인 이익이나 다름없는 정권의 이득을 위해서 국민이 부여한 권력을 남용했다는 것이다. 이것만으로도 MB 정권은 존재해야하는 정당성을 잃었다고 봐야하지 않을까? 이어지는 무수한 거짓들과 은폐의혹은 단지 덤으로 남겨두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