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 저녁 출판 기념회를 다녀오던 중 선배 기자로부터 이상한 소식을 들었다. 본인도 자세히는 모르지만 서해에서 초계함이 침몰했는데 폭발이 있었고 인근에서는 총격 소리를 들었단다.
내가 복무한 곳은 레이더 기지
나는 군복무를 레이더 기지에서 했다. 육/해/공 합동 훈련을 셀 수 없을 정도로 받았고 직접 무전 교신으로 상황전개에 참여했다. 때문에 초계함정이 뭔지도 알았고 그게 침몰한다면 보통 일이 아니라는 것도 안다. 물론 정확한 진상이 확인된 것은 아니지만 그 선배도 만약을 대비해서 내게 안부 전화를 했단다. 일단은 정확하게 확인된 사실이 아니라서 뭐라고 하기는 그랬지만...
공교롭게도 그날은 현관 보조키가 잘못돼서 집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찜질방에서 자야했는데 조금 있다가 TV 뉴스에 속보가 나오는 것을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천안함 침몰 사건의 궁금증이 풀리지 않았다. 도대체 그게 왜 침몰한 걸까. 폭발이라고 해도 내부적으로 그럴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알고 있는데...만약에 공격을 받았다면 도대체 누가, 왜?
도대체 누가, 왜?
군 복무 당시 지겨울 정도로 워 게임(전쟁 대비 시나리오) 훈련을 했었기 때문에 일단 고전적인 수법은 아닌 것 같았다. 본격적인 전쟁이라면 우선적으로 레이더 기지 같은 곳들이 먼저 공격을 당하기 마련이다. 공격을 하는 본인들의 전력이 노출되는 것을 막아 효과적인 전투를 수행하기 위해서다(때문에 나는 복무 기간 내내 스트레스가 심했다).
만약에 전면전이라면 해상의 함정들은 물론 레이더 기지들도 어뢰나 미사일 공격으로 날아갔을 것이다. 그러나 사건 발생 몇 시간이 지나도 그런 소식은 없었다.
전쟁에 있어서 작전이란 시간과의 싸움이다. 진짜 전쟁이라면 이렇게 느릿하게 움직이지 못한다. 이 정도 되니 사람들이 현장에서 들었다는 총격소리도 혹시 조명탄 소리가 아니었을까 싶어졌다. 헬기에서 발사하는 그 소리들은 총 소리랑 똑같다.
그러나 여전한 의문은 도대체 멀쩡한 초계함이 왜 갑자기 폭발 하겠냐는 거다. 암초일 리는 없다고 생각된다. 배에도 레이더가 다 있는데 무슨 암초에 걸린단 말인가...자체적으로 탄약들이 폭발한다는 것도 상식적으로는 말이 안 된다. 더군다나 내가 알기론 해군 함정은 군기가 매우 강하다. 어느 정치인의 지적처럼 탄약들 옆에서 위험한 일을 벌일 병사는 내가 알기론 없다(그 발언의 정치인은 희생자 가족들은 물론 국민들에게 사과해야 한다).
북한 공격 추정이 나올 수 있었던 이유
1. 이명박 정권에서 북한이 대립으로 전환
물론 북한은 현재 이명박 정권의 선제 타격론을 선전포고로 간주하겠다고 한 적이 있다. 전쟁이라면 억지스럽더라도 명분이 생긴 셈이다. 더군다나 올 초에 공개된 자료를 보니 남한의 지형을 모형으로 세워놓은 훈련도 있었던 듯하다. 같은 민족이지만 그쪽도 권력자들은 정말 비호감이다.
더군다나 6자 회담을 앞에 두고 있지만 지난 서해교전도 평화 분위기 속에 벌어진 일이었다. 정치 경제적으로 불안정한 북한은 쉽게 예측할 수 없는 변수들을 지닌다. 때문에 기자들도 당황해서 북한이 그랬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했을 수 있다. 한나라당으로 정권이 바뀌자 북한이 호전적으로 변한 건 사실이기 때문이다.
2. 폭발 위치
증언으로 알 수 있듯 천안함이 침몰한 원인은 함정의 뒷 부분 폭발이다. 내부는 충격 차단에 강한 격자 구조이기 때문에 탄약 등이 폭발한다고 배가 침몰할 정도는 아니므로 외부적인 요인이 더 높은 확률을 가지고 있다. 그렇게 봤을 경우 어뢰에 의한 공격이라는 가설에 무게가 실린다. 더군다나 일반적으로 어뢰는 배의 뒷 부분에 달린 스크류 소음 등을 포착해 목표물을 정한다. 음파 탐지 어뢰의 경우 함미에서 폭발하게 된다.
3. 외부 공격 추정에서의 주의점
물론 위의 추정에는 공격자가 북한일 것이라는 전제도 깔려 있다. 하지만 알 수 없는 일이다. 한반도의 전쟁으로 이득을 보려는 제 3국의 개입 가능성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정말로 엉뚱한 추정
이런 저런 상황 때문에 대통령도 찔렸던 건지 지하벙커에 들어갔다는데 상황을 본다면 실상은 부끄러운 일이다. 군사 문제로 벙커에 들어간 다는 것은 전쟁을 암시하는 행동 언어라고 봐야 한다. 국민들이 어떻게 동요하지 않을 수 있나? 아직까지 특별한 전면전 징후도 없는데 그 상황에서 그래야 했던 이유는 뭘까. 군의 최고 결정권자로서 경솔했던 건 아닐까. 아니면 또 다른 목적이 있었을까?
사실은 나도 처음 소식을 들었을 때는 북한을 떠올렸다. 그러나 시간상 전쟁 시나리오에서 앞뒤가 맞지 않았다. 전면전이 아닌 상황에서 이번 사건이 북한에 이득이 될 부분은 없어 보인다. 더군다나 어뢰라면 특유의 소음 때문에 탐지가 가능할 것이다.
침몰한 천안호는 대잠 탐지 장비를 갖춘 초계함이다.
침몰한 천안호는 대잠 탐지 장비를 갖춘 초계함이다. 어뢰라면 알아차리고 경보가 울렸을 것이다. 경보가 울리면 군 사령부는 어뢰 공격 사실을 알게 된다. 하지만 그런 발표나 대응태세는 전혀 없었다. 때문에 사건 현장 부근에서 잠수함이나 어뢰발사가 탐지된 흔적은 전혀 없는 것 같다. 생존자들 역시 화약 냄새를 맡지 못했다고 한다.
그런데도 대통령은 벙커에서 전시 분위기를 조성하고 외부 폭발 가능성 기사들이 나온다. 때문에 하루가 지나니 솔직히 다른 세력의 개입이나 정치적 이득을 위한 음모로 흘러가지 않을까 싶은 생각까지 들지만 뭐 내 개인적인 망상이길 바랄 뿐이고...
다시 확인한 언론보도의 천박함
그런데 언제나 이 '추정'이 문제다. 언론이 하는 일이 과연 무엇인가? 그리고 그 영향력으로 우리 사회는 어디로 가는가? 언론은 정확하게 확인된 사실을 보도해야 한다. 그러나 이 추청이라는 말도 같이 보도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번 북한 공격 해프닝도 사실 정확한 확인을 거치지 않은 방송 자막이 시작이었다.
정확한 사실은 해군 함정이 침몰했지만 원인은 아직 모르며 (분단 상황의 민감한 문제이기 때문에)북한과의 전면전 시나리오와는 거리가 멀다는 것. 수많은 실종자가 발생했다는 것. 이것이다.
의문이 있다고 이것저것 추정할 수는 있다. 그러나 그 추정이 미디어를 통해 공식 보도가 될 경우 사회에, 개인에 미치는 영향력은 얼마나 막강한가? 만약에 검찰과 언론이 그놈의 추정만 남발하지 않았더라도 대통령을 역임한 전직 정치인이 부엉이 바위에서 투신하는 비극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이것은 세계 역사상 유래가 없는 사건이다. 바꿔 말하면 지금 대한민국의 언론은 세계유래가 없을 정도로 지나친 추정을 남발하고 있다는 말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