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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strend report]/영화

다크 나이트 (The Dark Knight, 2008) - 영웅 따윈 필요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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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트 나이트 - 극 중 불타는 '조커'의 카드는 마치 연쇄 살인범 특유의 '서명'처럼 사용된다.



스파이더맨이나 슈퍼맨 등 일반적인 영웅과는 다르게, 서민적 모습이라곤 눈곱만큼도 없는 귀족 영웅인 배트맨이 활동하는 공간, 영화 속 세계관은 불평등의 결정체다. 고담이란 도시는 악이 지배하며 영웅을 필요로 한다. 그 영웅은 자본가, 소수 엘리트로 표현된다. 사실 이것부터가 평등을 중심 사상으로 하는 민주주의 정신에 위배되는 것이다. 대중이 소수의 힘 아래 있는 사회는 봉건주의와 다를 바 없는데, 사실 루소의 지적처럼 대의민주주의 역시 대표를 선출하는 순간 대중을 노예로 만드는 휴지조각에 불과하다는 것과 같다. 우리 사회의 모습만 보더라도, 국회의원이나 대통령이라는 작자가 국민의 의견을 제대로 듣지 않는다. 여론을 무시하고 위헌 논란까지 일으키면서 남의 나라 국민을 위한 쇠고기 수입을 강행하는 정부는 과연 어느 나라 정부인가. 대운하와 민영화를 80% 이상의 국민이 반대했음에도, 같거나 부분적인 프로젝트를 이름만 바꿔서 실행한다. 의사를 결정하는 데 있어서 그들에게 국민은 없다. 자신들의 이익만 있을 뿐. 모리스 버만의 지적처럼 권력이 집중된 영웅이 아닌, 구성원 각자의 개인주의적 실천과 노력만이 세상을 변화시킬 희망이다. 애석하게도 현재 자본주의 체제하의 대의민주주의는 돈과 권력을 소수 귀족층에게 집중시켰다. 도시를 통해 사회적 갈등을 담아내는 배트맨 시리즈는 이러한 현대 정치의 풍자이며 반영인 것이다.


배트맨 1의 경우 경직된 보수적 체제의 전복자로 조커를 등장시킨다. 배트맨 1에서의 조커는 장난꾸러기이자 무정부주의자였으며, 나름대로 예술을 하는 포스트 모던적인 악동이었다. 사실 악의 심판자를 자처하며 기존 사회의 유지를 꾀하는 배트맨은 지배층 권력의 상징이자 파수꾼이다. 그의 눈에 조커는 체제를 위협하는 불순분자이자 싸이코, 악의 축이다. 과연 배트맨은 악당을 무찌르고 사회를 살기 좋게 만드는 인물인가? 천만에. 배트맨이 나타나고 10년 넘도록 고담시에는 평화가 찾아온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악당이 줄어들기는커녕 자꾸만 늘어난다. 그가 있기에 사회의 악은 더욱 번창한다. 결국 배트맨은 그가 변화시키려는 사회의 체제에 순응함으로서 현상유지에만 도움을 주는 모순에 빠진 캐릭터다. 이것은 배트맨이라는 캐릭터가 가진 신분, 계급적 정체성의 한계 때문이다. 가진 자들의 편에서, 가진 자들의 시각으로, 주관적인 정의에 따라 폭력을 휘두르기 때문이다. 따라서 배트맨 고유의 테마는 ‘역설’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은 하비 덴트 일행이 호송작전을 펼치는 도중 나타나는 소방차의 모습으로 형상화된다. 불을 끄는 소방차가 오히려 불길에 휩싸이는 쇼트 말이다. 도로를 막은 장애물이 하필 불타는 소방차라니, 감독의 장난스런 농담(조크)다.


과연 배트맨이 휘두르는 힘의 정당성은 무엇일까? 알다시피 911 테러 이후 미국의 과도한 폭력정치를 풍자하는 다크 나이트는 그런 질문을 던지기 위해 아니키스트인 조커를 등장 시킨 셈이다. 귀족층이 유지하는 정치 제도권에 대한 반항적인 요소로서. 하지만 다크 나이트의 조커에게선 천진함과 장난꾸러기의 모습을 찾을 수 없다. 예술이나 유희 따윈 즐기지 않는다. 배트맨 1에서와는 달리 조커는 좀 더 잔인한 폭력배, 미치광이라는 표현도 모자를 사이코패스에 가깝게 그려진다. 이건 다크 나이트가 체제전복 세력에 대해서 아주 부정적인 해석을 전제로 함을 보여주는 것일까. 아니면 세상을 바꾸기 위해선 좀 더 진지하고 결단력 있는 폭력 혁명이 필요함을 역설하는 것일까. 둘 다 아니다. 사실 911 테러를 일으킨 것이 ‘정말로’ 이슬람 세력이라면 그것은 미 제국주의로부터의 독립투쟁이자 혁명이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이러한 것을 반영할 수 밖에 없는 조커는 자연스레 '진지한' 미치광이가 되어 광기를 분출시킨다.


결말은 역시나 예상 대로다. 배트맨이 승리하고 체제는 유지되는. 이와 더불어서 어쭙잖은 변명이 보너스로 주어진다. 바로 하비 덴트의 죽음과 관련된 것인데, 사람들이 믿고 싶은 정의는 청렴하고 강직한 검사의 모습과도 같지만 결국 허상일 뿐이었고, 정작 필요한 것은 배트맨이 행한 온갖 불법과 인권침해, 잔인한 폭력이라는 변명이다. 그렇게 다크 나이트는 복수에 미쳐버린 하비 덴트의 죽음을 미화시키는 거짓말과 함께 어둠의 영웅을 자처하는 한 부자 청년의 우수에 가득 찬 퇴장으로 끝난다. 이것이 정당화 되는 이유는 하비 덴트가 마지막에 악에 굴복했기 때문에. 웃기지 않나. 이 영화의 주인공은 소수의 권력을 정당화하는 영웅주의에 찬성하며 그것이 세상의 악과 싸울 현실적 방법이라고 한다. 하지만 하비 덴트의 몰락이 보여주는 것이야 말로 영웅주의의 허상과 위험을 나타낸다. 중반 식당에서 민주주의와 독재를 소재로 나눈 대화가 이를 반영하지만, 배트맨을 비롯한 일당들은 그 간단한 진리조차 무시한 채 자신들의 행위를 정당화 시킨다. 영웅에 의해 그 존립이 보호받는 시스템은 위험하며 오히려 불화만 일으키는데 그것을 깨닫지 못한다. 따지고 보면 조커 또한 악의 영웅이다. 오히려 희망은 유람선에서 서로의 폭탄을 터트리지 않는 양심적 집단지성에 근거한다. 일반인 승객들 가운데 폭탄을 터뜨리자는 의견이 많이 나오는 장면은 민주주의 원칙인 다수결의 폐해를 반영하지만 그것을 대중 스스로 극복하는 모습을 보여 줌으로서 결국 직접민주주의의 희망을 말하고 있다. 또한 배트맨도 이들이 폭탄을 터뜨리지 않으리란 것을 알았다. 즉, 돈 많은 보수 꼴통들은 대중의 지성과 양심을 알면서도 쌩쇼를 한다. 바로 자신들의 존재가치를 증명하고 계속 권력을 유지하기 위함인데, 오히려 그 때문에 세상은 늘 시끄럽다. 이것이 다크 나이트가 던지는 패러독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