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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strend report]/사회·정치

깡패 자본주의와 자발적 백수 되기

“더 이상 꿈꿀 것이 없음은 죽음을 의미한다.”

-엠마 골드만


꿈을 꿀 수 없는 사회는 생명력 없는 화석과도 같다. 꿈꾸고 움직일 수 있게 하는 사회적 에너지의 고갈. 이것이 자본주의에 순응해온 우리 사회의 현주소다. 구직 단념자가 14만 명에 육박하고 그 수가 갈수록 증가하고 있다는 사실은 무엇을 말하나? 생산을 위해 움직이는 것을 점점 멈추고 있다는 것이다. 꿈도, 희망도 주지 못하는 사회는 참담하다.

김수행 성공회대 석좌 교수(전 서울대 마르크스 경제학자)가 지적한 것처럼 자본주의 시스템은 “생산 활동이나 산업 활동보다도 금융활동으로 더 높은 이윤율을 얻어”왔다. 바로 금융 자본주의 사회인데, 생산이 아닌 주식이나 채권, 펀드 등의 ‘돈놀이’로 돌아가던 시스템이니 근본적인 이윤율은 올라가지 않고 거품이 사라지자 그 추악한 몰골이 드러난 셈이다.



쿠엔틴 마시 <고리 대금업자와 그의 아내>
관심은 돈 뿐, 교양과 지성(책)은 손에 들린 겉치장에 불과한 부부.


생산이나 산업 활동이 아닌 돈놀이로 부를 창출하는 경제 즉, 사채업자식 경제인 것이다. 이러한 돈놀이는 경제학 초기에만 하더라도 아주 부도덕한 것으로 여겨졌다. 어려운 사람이 있으면 도와주는 것이 당연하고 돈 좀 있다고 이자 따위로 부를 창출해서는 안 된다는 도덕적인 시대가 있었다. 그랬던 것이 은행가의 교활한 이미지 메이킹-바로 이익의 쥐꼬리만큼 사회공헌-에 의하여 점점 희석 되어갔으며 결국 금융자본주의가 정당성을 얻게 된 것이다(고리대금업이 가난한 사람으로부터 부당한 이자를 긁어모은다는 개념이 일반적이던 19~20세기 당시,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금융업자이자 JP모건의 창립자인 존 피어폰 모건은 ‘돈을 빼앗아 가는 자’라는 이미지를 불식시키기 위해 교회를 후원했다).

김수행 교수 역시 이러한 시스템에 대하여 “금융으로 경제가 발전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면서 “금융 활동으로 돈을 번다는 것이 쉽게 말하면 사기고 두 번째 말하면 투기고. 세 번째 하면 은행엘리트나 금융엘리트 들이 다른 사람의 재산을 빼가는 것”이라고 비판한다.

 

“금융엘리트들이 부익부 빈익빈이 될수록 부자가 더 부자가 되려고 더 열심히 일해 경제성장이 잘 일어난다고 했지만, 이런 것을 무당 경제학이라 부른다. 그렇게 계속 했는데 왜 이렇게 됐는가. 거기에 책임져야 한다. 미국이 그런 문제가 매우 심각해졌다.”

-김수행, 08/10/13 민주노동당 진보정치연구소 주최, '미국의 금융공황과 한국경제' 강연



돈 나고 사람 났니?
대한민국은 우울한 깡패 천국

경제학의 역사를 통해서도 알 수 있듯이, 애초 인간의 가치보다 돈의 가치를 중심으로 두었던 금융자본주의 시스템이 정당화되자 돈이면 최고라는 논리도 생겨났다. ‘돈놀이’를 규제하던 사회적 도덕이 자본가에 의하여 무너지고, 어떠한 수단이라도 돈만 벌면 그만이라는 인식이 확산된 것이다. 이것은 일제 친일파들의 정신이었으며 전 후 대한민국 사회를 좀먹어온 구조적인 병폐가 되었다. 돈만 있다면 범죄자도 칭송받는 세상. 우리나라 재계 매출액 1위인 삼성 창업주 이병철은 첫 사업으로 일제 하에서 농민들의 쌀을 수탈해 일본에 보내는 사업에 관여했으며 돈을 벌기 시작하자 김해평야에 나온 땅을 모조리 사들이고 대구와 부산에 주택 부지를 사놓는 등 부동산 투기에 열을 올렸다.

이후 이병철이 설립한 삼성은 돈을 벌기 위해 발암물질인 사카린을 밀수했으며 1966년 서울대 학생들이 ‘반(反) 밀수재벌 학생투쟁 위원회’를 결성해 “민족의 피를 빤 이병철을 즉각 구속하고 민족적 대죄를 진 악덕재벌의 재산을 몰수하라”고 요구하는 사태까지 이른다. 대중의 분노가 커지자 이병철은 “건설 중인 한국 비료를 국가에 바치겠다”라며 ‘사회헌납’을 공언하고야 만다.


하지만 삼성은 편법상속, 자사주 매입과 분식 회계 등 온갖 기업범죄 등을 저질러 왔으며 비자금을 통한 국가 권력 매수-바로 '삼성 장학생들'을 이용해 마치 마피아 집단처럼 용의주도하게 불법을 자행해 왔다. 여기에 쓰인 돈은 결과적으로 사회 구성원들과 노동자들의 삶을 희생시켰으며 법과 정의를 무력화 시켰다. 삼성의 불법적이며 폭력적인 노동자-노조 탄압은 유명하다. 비자금으로 사들인 수백억짜리 <행복한 눈물>이라는 미술품 뒤엔 맞교대 12시간 근무로 불과 백만원 남짓 받다 정리해고 당한 여성 노동자들의 피눈물이 있었다. 최근 청부살인 스캔들로 떠들썩한 CJ 역시 삼성의 계열사인데 김용철 변호사의 폭로나 노조원들의 증언을 통해서도 알 수 있듯이 대기업의 자본은 조폭이 하는 일도 마다하지 않았던 것이다. 노조를 설립하려던 직원을 납치, 감금, 협박 했다는 등의 ‘신화’는 유명하다. 그야말로 깡패 자본주의라 아니할 수 없다. 이런 기업이 만들어낸 신조어가 바로 ‘삼성 공화국’이라는 것이 개탄스러운 현실이다.

잘못된 것을 바로잡지 못하고, 이미 형성된 거대한 부패 조직을 묵인한 채 “과거에 발목 잡히지 말고 미래를 향해 나아가자” 따위의 망언을 그대로 주절거리는 사람들을 양산하기 위해 그들은 더욱더 서민의 삶을 조여올 것이다. 왜? 목구멍이 포도청이라고 돈 벌어먹기 바빠야 이런 진실과 지식들에 접근하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최장시간 노동과 최저임금에 시달리는 피곤한 삶을 살면서 어찌 공부에 매달리고 세상을 올바로 볼 수 있단 말인가. 더군다나 현실을 바로 볼수록 우울해 지는데 말이다.

우리 사회의 부자들은 우울증 환자까지 양산하고 있다. 삼성에게 정치자금 받아 부자 정권 대통령이 된 이명박이나 유모차 카페 운영자에게 고함을 지른 한나라당 의원에게 “당신 같은 사람들 때문에 영 우울하여 살고 싶지 않다. 사퇴하지 않으면 자살 하겠다”라고 말한다고 가정해 보자. 과연 그들이 어떻게 행동할까? 과연 한나라당은 <최진실법>운운할 자격이 있나?


백수들에게

아무리 열심히 일을 해도 부자가 될 수 없고, 사채업이 횡횡하며 눈 뜨고도 사기를 맞는 대한민국. 이 사회가 우리 청년들이 꿈 꿀 수 있는 공간이라는 생각을 하기는 너무나 힘들다. “더 이상 꿈꿀 것이 없음은 죽음을 의미한다” 엠마 골드만의 말처럼 모두 다 죽어야 하나? 차라리 우리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꿈을 꾸자. 그것이 불가능해 보이더라도. 독재정권에 대항하여 쿠바에서 혁명을 일으킨 카스트로와 체게바라. 그들은 불과 12명의 병사들로 전투기와 탱크에 맞서는 싸움을 시작해서 결국 나라를 다시 세웠지 않나.


그럼 무얼하지?

나는 여기서 체 게바라처럼 혁명군이 되어 정부군과 싸우라는 말은 하지 않겠다. 다만 백수들을 포함한 청년들이 생활(Lifestyle) 속에서 자연스럽게 실천할 수 있는 방법을 말하겠다. 그것은 ‘자발적인 백수 되기’다. 백수에게 백수가 되라고? 웃기다고 생각할 것이다. 당장 목구멍이 포도청인데, 굶어 죽으란 말이냐며 화를 낼지도 모른다. 백수가 된다는 것은 분명 아무것도 안한다는 것일 텐데 그것이 방법이라니. 하지만 이것은 백수라는 개념을 왜곡하는 것이다. 백수는 아무것도 안하고 놀기만 하는 존재가 아니다.

문화비평가인 고길섶의 지적처럼 “우리 사회 백수의 기준은 노동활동의 여부보다 그 노동의 대가가 돈으로 산출 되느냐에 맞춰져 있다. 우리 사회 백수에 대한 정의는 철저하게 자본주의적 규율에 근거하고 있는데, 이러한 접근법에 얽매여 있다면 늘 위기상황에 놓인 불안한 존재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한 접근법을 거부하고 자발적 백수가 되어 스스로를 해방 시킨다면 백수는 즐거운 주체가 될 수 있다.”

그렇다면, 자발적인 백수로서 어떠한 노동활동을 할 것인가.


비도덕적이고 불평등한 자본주의에 대한 저항-자발적인 백수 되기

“노동거부란 노동 자체를 거부하는 것이 아닙니다. 나의 노동이 자본의 욕망 중심으로 착취당하는 것을 거부하는 것이죠. 자본의 논리에 의한 가치 증식자로서가 아니라 자기 삶의 가치 창출자로 살아가자는 이야기입니다. 나는 모두가 백수가 되는 세상이 와야 하며 그런 세상이 진정한 코뮌사회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신자유주의의 횡포가 극에 달한 지금의 현실에서 노동거부를 주장하면 한심한 놈으로 보일게 뻔합니다. 젊은 사람들도 일자리를 못 찾아 거리를 헤매고, 도둑질하고, 자살하는 판국에, 일을 하지 말자고 하니 제정신이 아니라고 하겠지요. 하지만 좀 다르게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요? 일자리를 찾아 버둥댈 수 밖에 없는 현실인 것을 알지만, 백수가 되어 삶의 새로운 의미를 찾아가는 것도 괜찮지 않겠느냐는 것입니다. 백수가 된다고 해서 무조건 놀자는 것도 아닙니다. 아무것도 가진 것 없으면서도 나 자신의 생활양식을 선택할 수 있는 권리로서 백수의 삶을 꿈꾸어 보자는 것입니다.”

-고길섶, 부안, 끝나지 않은 노래

노동자를 탄압하고 자기들만 잘 살기 위해 사회를 망치는 기업자본. 법이 방해되면 법을 바꾸고, 비자금을 통해 공권력도 꼭두각시로 만드는 범죄적 시스템과 인간보다 돈을 우선으로 하는 풍조. 이것들을 지속시키는 부속품이 되길 바라는가? 노동을 거부하고 자발적인 백수가 되자는 말은 다소 황당한 이야기일 수 있다. 하지만, 노동거부라는 것은 생계를 포기하라는 것이 아닌, 기존 자본주의의 낡은 관념에서 자유로워지자는 의미이다. 더군다나 이것은 비교적 홀가분한 신분의 청년들이 불의가 지배하는 사회에 저항할 수 있는 가장 간단하면서도 합리적인 방법이다. 또한 이것은 민주노총 같은 단체보다도 더욱 막강한 <청년 총파업>이 될 것이다.

지금의 백수처럼 어쩔 수 없는 구조적 희생양의 처지에 머문다면 분명 백수라는 신세는 막막하다. 하지만 자유로운 만큼 창조적인 에너지를 발휘할 수만 있다면, 막연하더라도 시스템 에러를 일으키는 혁명을 시작할 수 있다. 백수의 힘이 모여 부조리한 사회에 블루 스크린을 띄우다가, 결국엔 대한민국을 리셋시킬 수 있다는 말이다. 불가능하다고 여겨질수록 도전할 가치가 있다는 것을 잊지 마시라. 오늘날 복지가 가장 잘 되어 행복지수가 높은 국가인 쿠바를 만든 사람들은 불과 12명의 꿈을 품은 청년들이었다.


-이 글의 주제와 현실적인 실천 방법은 여러분이 의견을 통해 발전될 수 있습니다. 같이 머리를 맞댈 분들 환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