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의 실체는 갈등하는 보수다
실업자와 노동자가 신음하고 죽어가는 동안 물가와 주가가 술렁이는 한국사회에서 이건희의 외제 자동차가 54억에 팔렸다는 기사가 씁쓸한 요즘, 엉뚱하게도 내 관심을 끄는 기사 하나.
<언론사들이 2008년 하반기 신입기자 공채시험 문제에 촛불정국과 관련한 문제를 잇달아 출제하고 있다. 언론사들이 올해 가장 뜨거웠던 사회 이슈로 ‘촛불’을 꼽고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준다는 평가다.>
미디어 오늘 김상만 기자의 보도에 따르면 언론사 입시 논술에 ‘촛불’이 단골로 등장했다고 한다. ‘촛불의 정치, 경제학’이니 ‘촛불시위가 남긴 것’이니 따위의 고루한 질문이나 던지는 조선이나 동아 같은 보수 신문들은 별 흥미를 끌지 못한 반면 경향신문이 출제한 문제는 조금 더 성의가 보인다. 바로 다음과 같은 물음이다.
“많은 시민들이 세계화 시대에 개방 없이는 살 수 없다는데 동의하면서도 한미 FTA협상, 미국산 쇠고기 협상 등에 반대 입장을 취했으며 심지어 주권을 훼손당했다고도 주장했다.
또 18대 총선에서는 뉴타운 공약 등에 이끌려 ‘욕망의 정치’를 추구했으나 촛불집회를 통해서는 탈 물질적 가치를 추구했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이런 이중적 모습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며 이 시대의 시민들은 어떤 존재인가”
경향의 지적은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하다. 한국사회의 시민들은 이중적인 모습을 보인 것이 아니다. 초지일관 상당히 보수적이었을 뿐이다. 세계화의 흐름 속에서도 한미 FTA협상, 미국산 쇠고기 협상 등에 반대하며 자신들의 생활 터전과 삶, 건강을 지키고자 하는 움직임. 역시 땅 투기와 집값 상승 따위의 개인적 이익들과 관련된 18대 총선의 결과, 그리고 자신들의 생활고를 가중시킬 정책을 반대하는 몸부림. 이 모든 것은 개혁과 변화가 아닌, 현재의 삶을 영위하고 지키기 위한 보수성에 기반 한다.
촛불 시위가 전반적으로 보수적이었다는 것은 진보진영에 대한 편견과 오해가 여전했음을 통해서도 드러난다. 실제로 촛불집회 초반부터 많은 시민들은 ‘다함께’나 ‘사노련’ 같은 사회 개혁 진보 세력에 대한 편견으로 가득했으며 “위험한 사상”이니 “빨갱이 단체”니 따위의 편견과 오해로 게시판을 도배질 했었다. 시위가 한창이던 5~6월 달, 시민들과 선두에 서던 다함께 깃발과 대책위를 욕하던 사람들은 이명박 탄핵연대-안티 이명박 카페의 회원들이었다. 현장에서 다함께 깃발을 보며 “에그, 저 빨갱이들...”하면서 혀를 차던 무리들은 노인들이 아닌 촛불을 든 20대 남녀 커플들이기도 했다. 연령과 성별에 상관없이 사람들은 좌파나 진보에 대해 무지했으며 완고한 편견을 지니고 있었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맑시즘이나 사회주의를 소련이나 북한과 연계시키는 무식함을 자랑한다. 옥스퍼드 세계 정치론조차 인정하는 21세기 마르크스주의 정치를 구닥다리로 치부하는가 하면, 한편에선 여전히 냉전 시대의 잣대를 가지고 악플이나 달아댄다. 이런 것들은 모두 조중동 등 보수 진영의 진보 개혁 세력에 대한 공격논리와 맥을 같이 했다는 점에서 이번 촛불시위의 보수성을 증명하는 것이다.
설마 가스통과 목검을 들고 설치던 자칭 보수 단체들과의 대립을 예로 들며 이 주장에 반박할 사람이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분명히 해둘 것은 양쪽의 중요한 차이는 단지 특정 이슈에 대한 의견이 달라서 갈렸다는 것뿐이다. 보수적인 상대가 미친 듯이 달려들었다는 것만 가지고 이쪽은 진보라는 식의 논리가 타당한지 생각해 볼 문제다.
왜 민주 노동당과 진보 신당을 지지하거나 당원이 되어 힘을 보태준 시민이 생각보다 적었는가. 그것은 근본적으로, 아직도 한국 사회의 대다수 시민들은 과거 우민정치의 대상에 그대로 머물러 있기 때문이 아닐까?
촛불을 폄하할 필요도, 미화할 필요도 없이 그대로 분석할 필요가 있다. 왜 시민들은 적극적인 방법으로 정권퇴진이라는 개혁과 변화를 이루지 못했고 미국산 쇠고기가 수입되자 촛불이 시들해 진 것인가. 왜 시내의 쇠고기 부산물 사용 식당들과 관련 업체들이 폐업하지 않았을까? 왜 직장인들의 대다수는 광우병 위험 인자로부터 자신들을 지켜줄 자연식 도시락을 싸지 않나. 이것은 정부에 반대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그들을 인정하는 것인가? 그래서 결국엔 그들의 결정에 복종하는 것인가? 좀 웃긴 예이긴 하지만 정부를 좌빨 단체라고 비난하던 보수 단체가 정부에게서 보조금을 타먹고 서울 시내 한복판에서 가스통 불 쇼를 벌이다가 결국엔 순순히 닭장차로 연행되는 것과 뭐가 다른가.
촛불이 커다란 변화를 이루지 못하고 시들해진 것은 그 주체가 충분히 깨어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명박 정권에 대한 경고와 함께 대운하 및 각종 민영화 법안 저지나 지체가 성과라고 할 수 있지만, 이번 촛불시위의 진정한 의미는 진보 개혁사상에 대한 관심 증가와 더불어 사회적 이슈와 화두를 던졌다는 것이다. 예전 부안이나 평택처럼 고립된 지역의 일부 시민이 아닌 전국적인 관심과 참여를 통해 한국 사회의 구성원 다수가 정부와 공권력의 거짓말과 부끄러운 줄 모르는 폭력을 직적 체험했다. 또한 비정규직 착취 문제, 삼성과 정부의 관계 등이 전보다 널리 알려지면서 사람들은 한국 사회를 지배하는 검은 자본의 실체를 알게 됐다. 그것은 생각보다 크고 거대한 장벽이다. 사람들은 고민하지 않을까. 저 장벽을 어떻게 넘을 수 있을까. 어떻게 부술 수 있을까. 아니,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저 당황해서 어찌해야 하는지 감을 못 잡고 있을 것이다. 그동안 순응해 왔던 체제의 실상이 이리도 추악하고 자신들을 위협할 수 있다는 점에서 실망과 분노를 느끼지만 여전히 자신들이 삶을 영위해 나가야할 시스템이라는 모순된 생각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이건 마치 어릴 때 부터 조련사에게 훈련받은 코끼리가 가느다란 새끼줄에 매여 고분거리는 것과 다름없지 않나.
그러나, 최근 미국의 경제위기와, 그것에 종속된 한국의 자본주의 시스템이 증명하고 있는 것은 체제의 유통기한이 다되어 간다는 사실이다. 설마, 정경유착과 각종 부정부패로 얼룩져 평등한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자본주의 사회 시스템이 영원할 거라 생각하는 건가? 아님 그러길 바라는 건가? 돈 많고 권력 있는 부자들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살고 싶은 노예근성? 아직도?
변화는 불가피하다. 그것을 깨달아야 한다. 진보란 보수가 아니다.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다. 낡은 보수성을 버리고 자본주의 이후의 한국 사회를 꿈꾸고 토론해야 할 시점. 바로 지금이 아닐까.
그래서인지 정부와 기득권들 또한 자신들의 돈과 권력을 지키기 위한 발악에 열중이다. 촛불이 시들자 자신들의 배를 불려주는 '체제'를 위협하는 세력에 대한 '엄중한' 탄압을 자행하고 있다. 이럴 때 평등한 사회를 꿈꾸는 사람들은 더욱 힘을 모아 저항해야 한다. 침몰하는 미국식 시장경제와 제국주의, 자본주의 따위에 언제까지나 편승해야 하나. 앞으로도 계속 빈익빈 부익부, 노동빈곤 세상을 살아갈 텐가. 유통기한 다 된 ‘불량식품’에 저항하는 것은 모두가 평등하고 지속 가능한 사회 시스템을 위한 건전한 노력이다. 다함께 힘을 모아 평등과 정의를 억누르는 한국 사회의 부정부패 세력에게 통쾌한 뻑큐를 날려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