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strend report]/영화

<위드 시네마> 대표 인터뷰

굿럭쿄야 2009. 2. 22. 22:28

요즘 한동안 독립영화가 화제로 떠오른 듯하다. 정말 그럴까? 글쎄, 독립영화가 아니라 단지 <워낭소리> 열풍이었을 뿐이다. 이미 <워낭소리>의 흥행 양상은 현재의 독립영화와는 180도 다른 일반 충무로 히트작과 동일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 다른 독립 영화들은 그렇지 못하다. <낮술> 같은 작품들이 주목을 받기도 했지만 흥행은 어떠한가? 게다가 중요한 것은 해외 독립영화들은 거의 무시당하고 있다.정말로 순수하게 '독립영화'라는 주제에 사람들의 관심이 쏠렸다면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의 작품들까지 아우르며 그 존재를 인지하고 관람했어야 하지 않을까? 그나마 국내 독립영화가 더 전망이 밝긴 하다.

26일 개봉할 <나의 마음은 지지 않았다>는 물론 해외 영화제에서 <방황의 날들>로 많은 상을 받았던 김소영 감독도 <나무 없는 산>이라는 작품을 개봉 준비 중이다(이 작품은 며칠 전 베를린 영화제에서 에큐메니컬상(인류애를 다룬 영화에 주어지는 상)을 수상했다고 한다).

그런데. 헐리웃의 대안영화 옹호자요, 명망 높은 평론가인 짐 호버먼이 2008년 최고의 작품으로 선정한 지아장커 감독의 <24 시티>는 단 한 개 극장에서 상영하고 있다. 그것도 정해진 요일에만. 개봉 후 삼주 동안 관객은 천 명이 조금 넘은 정도라고….

간혹 일부 기사에서 <워낭 소리>와 더불어 짤막하게 해외 독립영화들에 대한 언급도 하고는 있지만 그냥 사례로 제시하는 수준. 어찌됐건 주목을 받아도 국내 독립영화들이 중점적으로 다뤄진다. 일반 상업 영화의 경우엔 국내외 작품들이 비슷하게 다뤄지는데 유독 해외 독립영화들은 소외되는 느낌. 왜 그럴까?

"하나의 사회는 본연의 문화권 안에서 가장 원활한 소통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 예로, 최근 개봉한 <24 시티>는 중국인에게 피부로 와 닿는 그들의 이야기를 (그들에게) 익숙한 배우와 모국어를 통해 전달하고 있지만, 한국 관객에게는 매우 생소하고 이질적으로 느껴질 테죠."

<24 시티>를 수입한 위드 시네마 대표의 말이다. 그동안 위드 시네마는 구소련의 락커이자 배우였던 '빅토르 최'가 출연한 <이글라>, <스틸 라이프>, <크레이지>, <무용>, <바시르와 왈츠를> 등 수많은 해외 독립영화들과 작품성 강한 영화들을 국내에 소개해 온 곳이다.


그곳의 대표로 일하는 장선윤씨는 국내 독립영화 감독 혹은 스태프들과도 종종 의견을 교환하며 해외 영화제에 이들의 작품을 소개하기도 한다. 솔직히 말해 자신이 지금까지 수입한 영화 중 흥행에 성공한 것은 하나도 없다는 장선윤 대표. 그는 왜 돈도 못 버는 작품들을 꾸준하게 수입해서 국내에 알리고 있을까?

"만일 모든 사회가 자급자족식의 문화를 영위한다면 발전하기 어려울 겁니다. 이는 글로벌시대를 살면서는 더더욱 불가능한 일이고요. 대한민국 역시 '다문화 사회'로 변해 가는데 있어 동질적-획일적 영화뿐 아니라 다양한 영화의 스펙트럼이 필요함은 부정할 수 없을 겁니다."

오호라... 뭔가 사명감이라도 가지고 있는 것일까. 그렇다면 그가 생각하는 독립영화의 가치란 무엇일까? 사회 문화의 발전?

"독립영화는 이름 그대로 거대한 영화산업구조에서 어느 정도 독립되어 자유로울 수 있는 영화를 말합니다. 그만큼 필름메이커의 독특한 이념과 느낌을 새로운 방법으로 표현할 수 있는 기회의 범주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독립영화를 작가주의, 예술영화와 공통되게 분류하기도 하고요.

변증법적 진화론에 의거하여 보더라도, 정(正)에 해당하는 주류가 있다면 반(反)에 해당하는 비주류가 반드시 존재하여야만 한 단계 도약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영화는 현대 문화산업의 큰 축을 이루고 있기 때문에, 독립영화는 지배적인 주류 영화의 틈바구니에서 크고 작은 신선한 반향을 일으키는 필수불가결한 존재라 할 수 있습니다. 해외 필름 마켓에서도 독립영화를 통해 한국 영화의 무한한 발전 가능성을 찾는다면서 이를 높이 평가하고 있고요."

자연스럽게 <워낭소리> 이야기가 나왔다. 분명 그 영화가 가지고 있는 장점은 현대 도시의 사람들이 잊고 살던 것에 대한 '그리움'을 자극하는 면이다. 이것이 바로 흥행 성공 요인이지 않을까. 경제적으로도, 정치적으로도 어려운 시기에 말이다. 때문에 비슷한 상황에서 열풍을 일으킨 <집으로>와도 비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어느 특정 영화의 흥행만으로 전체 독립영화의 미래를 낙관하기엔 무리가 있을 터.

"물론 그렇습니다. 모든 영화가 그렇듯, 독립영화의 흥행은 시기를 탑니다. 워낭소리의 경우, <집으로>와 같이 재정적으로 어려운 시기에 개봉하여 향수를 일으켰다는 점이 주된 흥행 요인으로 작용하였음에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관객이 작품에 얼마나 공감하는가, 즉 작품이 관객에게 어떻게 다가가 감정의 동요를 불러일으키는가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독립영화라 하여 여타의 상업영화와 크게 다른 것은 없습니다. 영화란, 극영화든 다큐멘터리든 간에, 본질적으로 관객과의 소통을 최우선으로 합니다."

그런데 <워낭소리> 현상을 보면 류승완 감독의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가 떠오르기도 한다. 당시에도 독립영화가 극장에 걸려 상업영화들처럼 상영되는 것을 보고 많은 사람들이 기대를 가졌지만 이후 다른 작품들이 활발하게 호응을 얻지는 못했으니까. 원인은 무엇일까? 그의 생각을 물어봤다.

"독립영화 대부분의 저조한 흥행성적은 '독립영화'라는 이름에서 시작되는 선입견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닐까요. 아직까지도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에 목매는 극장들과 그러한 입맛에 길들여져 편식하는 대중은 각기 다른 색깔을 지닌 독립영화를 '다르다'는 이유로 배척합니다.

그래서 한 편이 큰 호응을 얻어다 해도 일시적인 현상에 불과할 수밖에 없는 것은, 다양성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대한민국 문화의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기 때문이라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다양성과 함께 재능 있는 인재들의 활동이 보장되기 위해서 필요한 정책은 무엇일까? 예술영화 전용관이 실제로 도움이 되고는 있을까. 혹시 예술인에 대한 생계비 지원이나 마이너 쿼터 같은 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었다.

"예술영화 전용관은 장단점을 모두 내포하고 있습니다. 전과 비교하자면 큰 극장에서 작은 영화를 볼 수 있는 기회가 생긴 것은 사실이나, 컨텐츠를 고려하지 않고 의무감에 무작위로 상영한다는 문제점도 안고 있습니다.

비유컨대, 솟아 오른 작은 샘의 물이 고여 썩을 수 있다는 거죠. 그러므로 배급차원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예술인에 대한 생계비 지원과 보다 전폭적인 마이너 쿼터 제도가 필요한 것도 사실입니다. 예술인 생계비 지원은 문화계에 끊임없이 새로운 자극을 주는 차원이고, 마이너 쿼터는 예술영화 전용관과 더불어 보다 단단한 구조적 안전장치를 마련하는 차원입니다."

혹자는 말한다. 이제는 '독립영화'라는 단어는 없어져야 한다고. 덧붙여서 아무리 좋은 정책들이 쏟아져 나와도 소용없다고. 1년에 연출전공자만 수백 명씩 대학에서 나오고, 대학원이며, 아카데미, 학원까지 합치면 무수히 많은 전공자들이 나오는데 어떻게 그들을 다 살릴 수 있단 말인가. 하지만 예술인을 지배하는 환경의 힘 또한 무시할 수 없으며 그것은 곧 국가 정책과도 연결됨을 부인할 수는 없을 터. 베를린 영화제와 해외 마켓을 돌아보는 바쁜 일정 속에서 겨우 짬을 내어 인터뷰를 해준 그에게 앞으로의 소망을 물었더니 다음과 같이 말한다.

"워낭소리의 흥행 성공이 마냥 부러울 따름이죠(웃음). 저희가 소개하는 작품들을 좀 더 많은 관객들이 봐주셨으면 하는 것 외에는 더 바랄 게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