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strend report]/영화

<슬럼독 밀리어네어> 빈곤, 운명과 환상의 절망

굿럭쿄야 2009. 3. 30. 05:28


인도는 왜 그렇게 가난할까. 영화 <슬럼독 밀리어네어>를 보고나면 한 번쯤 들법한 생각. 고아가 되어 쓰레기장과 앵벌이 조직을 거쳐 서빙으로 생계를 꾸리던 18세 소년 자말이 거액의 상금이 걸린 백만장자 퀴즈쇼에 도전한다는 소재. 언뜻 인물이 처한 배경 설정만을 본다면 굉장히 작위적으로 보인다. 그런데 이것이 현실이다.

전 세계 빈민의 약 38%가 집중되어 살아가는 인도는 사실 2007년 국내총생산(GDP) 기준 세계 12위, 구매력평가 기준 세계 4위를 차지한다. 거대 신흥 성장국으로 불리는 인도가 실상은 아시아 최대의 빈곤국가라는 웃지 못 할 현실. 전체 인구 3분의 1 이상이 절대 빈곤의 기준 보다도 열악한 환경에서 살아가고 있다. 영화에 나온 것처럼 쓰레기장을 뒤지며 하루 수백원 정도의 돈을 벌어 연명한다(2005년 세계은행은 하루 1,500원 정도로 생계를 유지하는 상태를 극빈곤으로 정의한 바 있다. 물가가 오른 지금은...).

이들은 도대체 왜 이렇게 가난하게 살까. 그것은 주어진 환경이 그러하기 때문이다. 스스로의 힘으로는 제어 불가능한 사회 구조. 영국의 식민지 시절 통치와 세금확보가 중요시되던 인도의 국가발전은 상대적으로 뒷전이었다. 독립 후엔 이미 빈곤이 만연해 있는 상황. 물론 소수의 엘리트 귀족은 제외하고.

자본주의 체제가 되어 시장에 맡긴 정책은 오히려 경제적인 차별만 증대시켰으며 독립 이후 꾸준하게 지속된 정부의 개발계획도 별다른 힘을 쓰지 못했다. 더군다나 선별적인 개발 접근을 통해 의료나 교육 같은 복지문제 마저 소수 부유층만을 위해 형성되어 불평등이 조장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인도의 시민들이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만들어 주는 것은 모든 것을 운명으로 돌리는 자세. 이토록 불평등하며 서럽고 더러운 세상에서 어떠한 합리적인 이유를 찾아내고 순응하지 않는다면 아마도 미쳐버릴 것이다. 때문에 운명이란 현실의 차별을 설명하고 인정하게 만드는 작용을 할 것이다.

영화 <슬럼독 밀리어네어>에는 그러한 인도인의 정서가 반영되어 있는데 흥미롭게도 쌍둥이 형제가 서로 대립되는 가치관을 보여준다. 동생인 자말은 운명에 순응하지만 형은 야망을 이루기 위해 선량함과 영혼까지 팔면서 신분 상승을 노린다.

과연 결말은? 운명의 승리. 자유의지를 가지고 삶을 개척하려던 저항은 욕조 속에서 침몰하고 만다. 그런데 현실에서 자말처럼 행동하면 신분 상승은커녕 평생 쓰레기 더미 속에서 살다 일찌감치 생을 마감해야 하리라. 퀴즈쇼가 진행 되면서 보여 지는 현실은 그것을 강하게 입증하며 해피엔딩은 사실상 영화에서나 이루어질 환상일 뿐이다.

엔딩 크래딧이 오르기 직전 펼쳐지는 흥겨운 춤판도 결국엔 언제 그랬냐는 듯 어둠과 정적만 남기고 깔끔히 사라지는 것. 그것이야말로 이 영화의 진실이다. 아, 또 한 가지. 자말이 결승에 나갈 때 보여 지는 어두컴컴한 인도 빈민굴의 모습. 겉은 환호하고 있지만 실상은 거친 어둠과 절망으로 가득 찬. 그 장면 하나로 이 영화를 다 읽을 수 있다.

물론 이 영화는 단순한 구조가 아니고 다양한 플롯을 담고 있다. 미스터리를 형성하는 도입부와 함께 두 가지 이야기가 교차편집으로 맞아 들어간다. 극적인 클라이막스 또한 두 가지가 존재하는 독특한 구조다. 모험, 탈출, 추적, 복수, 사랑, 의미 발견 등등의 플롯이 성장영화와 스릴러, 로맨스 등으로 완성된다.

사실 퀴즈 쇼를 소재로 인간승리 드라마를 보여준다는 것은 널리고 널린 전형적인 이야기다. 그러나 영화는 재미있다. 전형성을 진부하지 않도록 변주하는 기교가 시나리오에 가득하기 때문이다. 예상을 뒤엎는 전개가 계속되며 의외성을 조성하여 재미와 기대감을 불러일으킨다. 때문에 손에 땀을 쥐는 흥분과 함께 마지막까지 인생 역정의 퀴즈쇼에 집중하게 만든다. LA TIMES의 케네스 튜란은 “메이저 스튜디오가 좋아하는 할리우드 고전 멜로 드라마를 굉장히 모던한 스타일로 완성했다.”라며 이 영화를 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