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다 컵에 소주 넣고 물 타먹는 사람 봤어?
봄이 왔다. 하지만 언제나 겨울인 것만 같은 상처로 웅크린 채 걸어가는 사람들의 도시. 밤이면 어디론가 모여들고 취하기 위해 술을 마시는 문화. 사람들은 그것을 즐기는 것이라 칭하지만 과연 그럴까. 정말로 술을 즐기고 싶은 사람이라면 '칵테일 바'로 가보자.
술을 꼭 취하려고 마셔야 하나?
"우리나라는 술 문화가 잘못된 것 같아. 소주도 그냥 마시잖아. 그것도 샷으로. 하지만 알콜이 몸에 잘 안 맞는 사람도 있어. 사람마다 다 제각각인데 술자리에서는 같은 방식을 은근히 강요한다는 거지. 이웃나라 일본만 하더라도 소주에 물이나 우롱차를 희석해서 마신다고. 근데 우리나라는? 사이다 컵에 소주 한잔 넣고 물 타서 먹는 사람 봤어? 아직은 술에 대한 이해나 배려하는 문화가 모자라지 않나 싶어."
내 친구는 10년의 경력을 가진 바텐더다. 그가 삼겹살집에 들릴 경우 제일 좋아하는 칵테일은 쿨피스와 5:5 비율로 혼합한 소주.
"난 그게 제일 맛있으니까. 실제로 칵테일마다 레시피가 다 있지만 만드는 사람마다 맛은 다 달라. 자기가 좋아하는 취향대로 만들면 되. 술이란 건 정말로 즐기면서 마실 수 있을 때 의미가 있는 거지."
나의 경우엔 토론회 같은 곳에 참석 후 뒤풀이에도 많이 가는 편이다. 하지만 솔직히 말하면 그런 방식은 마음에 들지 않는다. 술이 취하면 제대로 대화가 안 되는데 왜 마시나 싶은 느낌. 정작 대화가 필요할 때 술은 도움이 안되는 경우가 많다.
마치 오래된 운동권 뒤풀이 스타일과 직장문화가 뒤섞인 그런 느낌에 답답함을 가지면서도 어쩔 수 없이 참석하곤 했던 자리들. 생맥주와 소주의 단조로움에서 벗어나 칵테일 바로 들어섰을 때, 나는 비로소 해방감을 느꼈다.
그곳에는 다양한 술들과 또 그 술들을 변형시킨 기발한 스타일의 자유, 그리고 흥겨운 수다와 놀이가 있다. 칵테일 바의 경우 손님들이 술을 마시면서 재미있게 놀 수 있도록 게임기나 다트는 물론이고 당구대까지 구비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물론 가장 재미있는 것은 바텐더와의 대화. 혼자서 술을 마시러 가도 전혀 부담스럽지 않은 이유가 그것이다.
또한 칵테일이라는 술은 카페의 커피처럼 한잔씩 주문한 후 대화를 나누기 딱 좋은 것들이 많다. 한 모금 마시고 조금 진하다 싶으면 얼음이 녹을 때까지 기다려도 된다. 한 모금씩 음미하며 마실 때 되살아나는 육감, 그것은 오직 칵테일 바에서만 경험할 수 있다. 때문에 대화도 진행하고 흥겹게 분위기를 띄울 수 있는 곳으로 칵테일 바처럼 좋은 곳이 없다.
바를 사이에 두고 형성되는 친밀감
재미있게 일하기 위해 최대한 편안한 스타일로 손님들을 상대한다는 친구 녀석도 가끔은 긴장하게 되는 순간이 있단다.
"처음 찾아와서 앉아마자 사람들이 잘 안 마시는 칵테일을 찾을 때. 그리고 주문하면서 레시피는 어떻게 해달라고 말할 때. 마지막으로 최대한 간단한 거 시킬 때. 그러면 저 사람이 바텐더가 아닌가 싶지. 그럴 때는 내 실력이 어떻게 비춰질지 살짝 신경 쓰여. 직업이라 어쩔 수 없나봐."
물론 바텐더의 경력이 오래 됐다고 손님이 만족할만한 칵테일을 내놓는 건 아니다. 그리 오래되지 않은 경력으로 환상적인 작품을 만들어내는 바텐더도 있으니까. 친구가 일하는 곳의 유일한 여자 바텐더가 그렇다.
화려한 묘기를 보여주지도 않고 때론 술병의 뚜껑도 따지 못해 쩔쩔매기도 하지만 완성해오는 칵테일 맛은 기가 막히다. 그런 그녀에게 혹시 남자 손님이 귀찮게 하는 경우는 없었냐고 물었다.
"예전에 정말 황당한 손님이 한 명 있었어요. 계속 전화번호를 달라고 조르더니 자꾸 자기랑 따로 만나 술을 마시자는 거예요. 난 싫은데 계속 그러니까 어이가 없었어요."
그녀는 결국 전에 일하던 그곳을 그만뒀다고 한다. 이후로 그녀는 아무에게나 번호를 알려주지 않는다. 바텐더를 무뢰하게 대할 경우 술 마시는 재미도 없고 다음에 가더라도 진심으로 환영받지 못하니 주의해야 한다. 물론 자주 가다보면 어느 정도 안면도 트이고 코드가 맞으면 친해 질 수도 있다. 이런 경우도 있다고 한다.
"손님들 성향이 워낙 다양해서 대화하면서도 거기에 맞게 이끌어 나가거든요. 그런 제 모습을 친하게 지내던 손님이 보더니 영업 잘한다고 비꼬듯 말해서 상처받은 적이 있어요. 그것들은 전부다 나의 일부분일 뿐인데 말이죠. 하지만 정말 심각한 고민을 안고 찾아와 혼자서 술을 마시던 손님이 나가면서 덕분에 기분이 좋아졌다고 말할 때 가장 보람을 느끼기도 해요."
아무래도 바에 앉아서 술을 마실 경우엔 바텐더와의 원만한 관계도 중요하다. 똑같은 사람이니 예의를 지키면서 시간을 보내면 그만큼 더 즐거워지는 곳이 칵테일 바다. 혹시 술을 마셔야 할 경우가 있다면 찾아가 보자. 처음 들리는 사람의 경우엔 주문 할 때 본인이 소화할 수 있는 향의 정도나 맛의 종류를 말해주면 더욱 취향에 맞는 칵테일을 만날 수 있다. 그곳에서 술이 가진 재미와 맛을 찾아가는 것은 각자의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