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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 : ~2010 >/사회

2009 부모님 전상서


하루가, 한 달이, 일 년이 갈수록 여기저기 아픈 곳만 늘어가는 부모님. 왜 그러셨나요. 가난한 시대라서 죽도록 일만해야 했기에 정작 당신들의 건강과 인권은 챙기지 못하고 일터의 소음과 유독가스, 분진 등 수많은 유해 화학물질에 찌들어 일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기셨나요. 정말로 소주에 삼겹살로 그 많은 안 좋은 것들이 몸 밖으로 빠져나가리라 믿으신 건가요. 아니면 하루 18시간 넘도록 일을 시키면서 몽둥이를 휘두르고 총칼로 억누르던 박정희 독재정권과 대를 이어온 그 잔당들 때문에 감히 나서시지 못하셨던 건가요. 경제를 살리자는 구호에 나라 경제가 좋아지면 집안 살림도 나아지리라 최면처럼 세뇌 받으신 부모님들. 증산, 수출, 건설, 개발. 너무나 열심히 일해 정작 쉬는 날엔 제대로 쉬어보지도 못하고 낮잠을 자면서 잠꼬대마저 일과 생산을 외치던 분들. 휴식과 여가가 곧 생산성 향상이며 인간의 권리임을 외쳐보지도 못하고 죽도록 일만하시던 부모님. 하지만 이 땅의 경제 구조는 매우 불평등하여 국가 경제를 살리자는 구호는 재벌과 권력자들의 지갑만 채워주는 암담한 현실을 치장하는 가리개가 되어주었고, 부모님과 우리 자식들의 서민 노동자 경제는 끝없이 착취당하며 굶어죽지 않길 바래야하는 처지가 되었습니다. 대한민국 경제는 지금 부자 경제와 서민경제로 나뉘어 있습니다. 부자 입에서 나오는 국가 경제를 살리자는 말, 이제는 거짓말인거 아시나요. 그러나, 아직도 부모님은 힘을 모아 경제를 살려야 한다는 그 구호를 최면처럼 되뇌고 계십니다.

 

힘을 모아 하나가 되자는 그 말. 사실은 서민과 노동자가 희생하라는 말. 우리의 마지막 남은 생명력까지 빨아먹으려는 흡혈귀 같은 재벌들의 추악한 속내라는 것을 아시면서도 오랜 세월 억눌려 지내온 자의 처량함을 무겁게 짊어지고 고생거리를 찾아 일도 없는 인력 사무소로 별을 보며 향하시는 부모님들. 세계에서 유일하게 난개발이라는 단어가 존재하는 대한민국에 아직도 건설과 개발 망령이 어슬렁거립니다. 그 나이의 고생이라곤 눈곱만큼도 모를 것 같은 여당의 대표가 전국을 공사장으로 만들어 망치소리가 울려 퍼지도록 해야 한다고 할 때, 무슨 생각이 드셨나요. 왜 청춘을 바쳐 일궈온 나라가 노년마저 힘들고 피곤하게, 가난하고 처량하게 만드는 것일까요. 정녕, 소음과 유해먼지 날리고 악취 나는, 시멘트가루 내려앉은 함바집 식사로 허기진 배를 채우는 일당 5만원의 위험한 공사판 일 말고는 편하고 인간답게 할 만한 일이 없다는 말인가요? 왜 공사판의 유해물질로 몸이 병들고 가난과 고통 속에 서서히 죽어가야 합니까. 그리고 더 이상 어딜 개발해야 한다는 말입니까. 쓸모도 없는 대운하를 기어코 하겠다는 건 정상인의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병적인 집착입니다.

 

이제는 우리들이 올라가 쉴 동산과 약수터도 없어지고 호화 아파트가 들어서고 차들이 쌩쌩 달리며 골프장만 가득 들어서 고급 외제차가 들락날락하는 개발지들. 손수 가꾸시던 텃밭과 약수터가 없어지자 노년에 더 이상 갈 곳이 없어진 할머니가 어느 날 멍한 눈빛으로 길을 나서셨다가 치매와 함께 다치신 몸으로 쓸쓸히 병원에 입원해 계실 뿐. 젊음을 바쳐 나라를 위해 일하고 노년에 망가지신 그분들의 삶을 국가는 왜 힘들게 하고, 쉴 곳마저 빼앗아가며, 병원비라도 주지 못할망정 그냥 방치하고 외면할까요. 대물림된 가난으로 수발 못하는 불효자가 되지 않기 위해 실업자 자식을 둔 부모님은 하루 한 끼씩만 드셔가며 병원비를 내고 계시지요. 도대체, 죽어라 일만하고 IMF 때는 얼마 안 되는 금붙이까지 내놓게 만들더니, 도대체 국가가 해주는 게 뭐란 말입니까? 개인과 가족의 행복과 평등한 권리를 지켜주는 것이 민주국가의 역할이거늘, 이놈의 나라는 왜 의무만 요구하고 해주는 것이 없나요. 유가환급 돈 몇 푼 잠시 쥐어주고 유류세 올려먹는 짓이나 하다니요. 공기업 민영화로 세금 더 내게 되면 그게 선진화라고 착각하는 걸까요. 왜 우리나라보다 선진 국가인 영국은 국민 소득 1만 달러도 안 되었을 때 무상 교육, 무상 의료를 해주면서 장기 임대 주택 정책을 우리보다 훨씬 못살던 1948년에 실행해서 살도록 했을까요. 지금 우리나라의 권력자들은 아파트가 남아돌아도 가난하고 집 없는 사람들에게 나눠주겠다는 말을 절대 하지 않습니다. 대한민국 정부에 따지고 싶습니다. 이 엄동설한에도 가슴에 불이 나서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가 목이 터져라 울부짖고 싶습니다.

 

작년 거리에서 비록 아프긴 했지만 갈수록 더해가는 삶의 고통이 더 크게 아픕니다. 합법적으로 보장된 청와대 근방에도 가지 못한 채, 새파란 전의경들의 방패와 군화발이 날아들던 그곳에서, 월남전에 나가서 조국에 돈도 많이 가져다 바치셨으나 고엽제로 삶이 망가진 어르신들이, 당신들을 보상받도록 노력해준 진보진영마저 빨갱이라고 가스통 앞세우며 달려드는 모습을 봤습니다. 당장 현실의 삶이 망가지더라도 보이지 않는 환상인 안보가 더 중요하다고 믿고 계시는 우리의 어르신들. 답답함과 분노보다도 더 큰 서글픔이 밀려옵니다. 권력이 주입한 반공 이데올로기가 몸에 배어, 인생을 아름답게 마무리해나갈 노년에 들어서까지 적개심과 증오를 품은 채 악행의 자서전을 채워나가시는 분들. 이 땅의 군복 입은 어르신들이여. 새해 건강하소서. 더 이상 어르신들처럼 권력이 주입하는 그릇된 가치와 이데올로기에 아이들의 다음 삶까지 희생당하지 않도록 교육도 지켜야 한다고 다짐합니다. 하지만, 보신각종이 울리고 해가 바뀌어도 남녀노소에게 폭력을 휘두르며 기본권과 국가 정체성인 헌법을 훼손하는 썩은 권력의 만행은 여전하였으니 그들은 도저히 용서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짓밟힌 제 마음은 그리 넓지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뻔뻔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고, 죄의식을 느끼지 못하며 자신들의 악행을 합리화하는 것이 마치 홀로코스트를 자행하던 나치와도 같습니다. 때문에 그들은 학살과 폭력에 반대하며 만들어진 세계 인권 선언을 짓밟고, 우리 사회의 약자들을 학대하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실업과 경제적 파탄 때문에 거리로 내몰려 살아가는 국민들에겐 노숙자라고 폭언을 날리며 차별과 만행을 일삼기도 합니다.

 

억대의 경제 사범은 풀려나더라도 굶어죽기 직전 도둑질을 하면 구제받지 못하고 교도소로 가는 나라. 부자들의 복지를 위해 종부세를 폐지하는 이 나라는 법과 치안까지도 과연 가진 자들만의 것입니까? 아, 더 이상 나라라는 단어도 입에 담기 싫습니다. 다만 피를 토하고 싶은 심정일 뿐입니다. 카아악, 정신 나간 위정자의 썩어문드러질 거짓 미소 위에 피 섞인 가래침을 시원하게 뱉어주고 싶습니다. 카아악, 크르렁, 감히 쥐새끼가 고양이를 궁지에 몰리게 하다니요. 희망찬 새해가 되도록 목구멍에 힘을 주고 거리로 나가렵니다. 저의 꿈은 좋은 세상이, 새로운 세상이 와서 모두가 행복하게 사는 것입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길 진심으로 소망합니다. 저는 고통에 찬 거리에서 피를 토하며 복을 구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