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가 되었다고 누구나 희망에 가득 차지는 않았을 것이다. 계속되는 불황에 직장까지 관둬야 할 경우 앞으로 살아갈 길이 막막할 터. 그렇다고 쉽사리 자영업에 뛰어들기도 어려운 일이다. IMF 이후로 한국의 자영업자 비율이 세계최고라고 하지 않나. 김밥 집을 차리면 바로 옆 건물에 또 김밥 집이 들어서는 현실에서 도대체 어떻게 장사를 해야 하나. 하지만 초원의 풀만으로 말을 살찌울 수는 없다. 현실에 안주하면 간신히 생활이 유지되다가도 어느 순간 도태될지 모를 일이다.
작년 말 매경이코노미에 <사양산업이 부활하는 까닭>이라는 재미있는 기사가 실렸다. 이 기사에 의하면 사양기업이 있을 뿐 사양산업은 없다고 한다. 그럼에도 자영업 시장의 과다경쟁은 물론 지금처럼 침체된 불황 속에서는 사실 뭘 하든 사양산업처럼 여겨질 것이다. 하지만 기회를 잘 포착하는 기업은 새롭게 거듭날 수 있음을 지적한 것이 이 기사였다. 실제로 사양산업으로 여겨지던 일반의류, 막걸리, 철도운송, 소금 등의 업종이 화려하게 거듭나 새로운 수익을 창출하는 사례들을 예로든 것이다.
이것을 소규모 자영업자들이 실제로 할 수 있는 창업에 적용해 보자. 수익률의 침체와 시장포화로 인해 사양산업으로 생각되는 PC방. 하지만 실제 창업에 들어갈 경우 조립 컴퓨터의 가격하락 덕분에 매장 임대료만 적당히 맞춘다면 초기자금이 얼마 들지 않는 편이다. 더군다나 컴퓨터에 대한 기본지식과 일반적인 서비스 자세만으로도 쉽게 매장 운영이 가능하다. 때문인지 너도 나도 경영에 뛰어들어 지금은 어딜 가나 PC방을 찾을 수 있다. 하지만 그만큼 경쟁은 피 튀길 지경.
매장마다 손님들을 더 끌기 위한 경쟁은 결국 이용요금의 하락까지 불러와 매장마다 출혈이 심화되고 있다. PC방 사장들의 권익을 보호한다는 '인문협' 단체의 회장조차 최근 시간당 요금을 500원으로 내린 것이 단적이 예다. 더군다나 2010년 이후로 금연구역이 매장 전체로 확대될 예정인 PC방은 현재 흡연층이 주요 고객을 이루고 있어 매출에 큰 타격을 눈앞에 두고 있다.
그렇다면 PC방을 창업업종 후보 목록에서 지우는 것이 좋을까. 기존의 방식을 따라 사업을 벌인다면 분명 망하기 쉬운 것이 PC방이다. 그러나 한국은 인터넷 엔터테인먼트, 특히 온라인 게임의 최강국으로 자리매김했다. 콘텐츠가 계속해서 성장하는 한 고객도 같이 늘어날 것이다. PC방 창업의 답은 변화하는 고객의 소비 스타일에 맞춘 매장 운영 방식과 관리의 혁신에 있다. 더군다나 기자가 취재한 결과 PC방이야 말로 환골 탈퇴할 경우 폭발적인 수익을 거둘 수 있는 무한한 가능성을 지니고 있었다.
<사례1>같은 건물 안에 500원과 1200원 PC방 공존
의정부 어느 빌딩에 위치한 모 PC방 사장은 작년 말부터 심각한 고민에 쌓였다. 이곳은 처음 오픈 당시 바로 옆에 위치한 극장 덕분에 상영시간을 기다리는 관객들이 몰려와 인산인해를 이루던 매장. 덕분에 한 달 동안 천만 원 가까운 수입을 올리기도 했다고 한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같은 건물 바로 몇 층 아래 대형 PC방이 들어서면서 이용요금을 500원으로 책정한 것이다. 컴퓨터 수도 적고 시간당 이용 요금도 1200원을 받아야 유지되는 이 매장의 사장은 갈수록 줄어드는 손님들을 보며 생존의 위협까지 느끼고 있다. 도대체 상도덕은 있단 말인가. 원망도 해봤지만 답이 생기는 건 아니었다.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요금을 똑같이 내려야 할까? 그러나 도저히 수지타산이 맞지 않는다. 갈수록 태산이라더니 최근에는 불황 때문인지 장시간 이용 후 돈을 안내고 도주하는 손님들까지 생겨났다.
<사례2>PC방 운영의 고정관념 벗어나자 매출 지속 상승
성북동에 위치한 어느 PC방. 이곳은 시간당 이용요금을 받지 않는다. 대신 손님들이 음료수 등 먹거리를 산 가격만큼 PC를 공짜로 쓰게 해준다. 매장의 컴퓨터 수를 줄이고 손님들이 자유롭게 보드게임을 하며 휴식할 수 있는 공간을 늘렸다. 이곳은 카페 개념으로 매장을 바꾸면서 오히려 매출이 늘었다. PC방이면서도 컴퓨터 수는 오히려 줄였으며 이용요금은 물론 매장 성격과 분위기까지 기존의 고정관념을 뛰어넘었다. 콘텐츠 회사에 가맹점 비용을 따로 지불해야하는 온라인 게임 이외에도 다양한 놀이 수단들을 갖춰 경쟁력과 수익성을 높였다. 더군다나 이용요금이 선불이라 결과적으로 돈 떼먹고 도망치는 손님은 전혀 없다.
제시된 사례는 모두 실제이다. 첫 번째 사례는 시장포화로 인해 벌어지는 과다 출혈경쟁의 가장 극적인 상황. 경쟁이라 하면 상대 매장에서 손님을 뺏어 와야 한다는 식으로 생각하기 쉽다. 때문에 가장 손쉬운 방법이 요금을 내리는 것. 그러나 이것은 말 그대로 너 죽고 나죽자는 것이다. 어차피 자영업을 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추세라면 같은 장사를 하는 사람이 언제라도 옆에 생겨날 수 있음을 자각하고 있어야 한다. 너도 나도 죽고보자는 식의 경쟁은 안정적으로 지속가능한 수익을 창출해 주지 못하며 성장까지 가로막는다. 진정한 경쟁이란 차별화를 통한 상생의 길이다.
<사례3>과일주스 전문점 옆 생과일주스 가게
먼저 언급한 500원과 1200원 PC방이 있는 건물 안에서는 또 다른 풍경도 벌어지고 있었다. 바로 과일주스 전문점 옆 생과일주스 가게이다. 두 가게 모두 비슷한 상품이 메뉴에 올라있다. 똑같이 생 딸기 주스를 파는 것이 한 예이다. 그러나 두 가게는 출혈경쟁이 아닌 차별화로 살길을 찾았다. 우선은 같은 딸기 주스라도 재료의 함량과 만드는 방법에서 차별을 두었다. 맛도 다르지만 한쪽에서는 통 얼음을 넣는 반면 다른 쪽에서는 얼음을 갈아 넣어주는 식이다. 또한 한쪽 가게에서 샌드위치와 군밤을 팔기 시작하자 다른 한쪽 가게에선 샌드위치를 팔지 않았다. 대신 커피와 아이스크림을 팔았다. 현재 두 가게 모두 손님들이 끊이지 않고 밀려들며 장사가 잘 되고 있다. 서로 같은 방식으로 맞붙었다면 분명 하나 혹은 모두가 망했을 것이다. 생과일주스 전문점을 운영하는 사장의 경우 20년간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창업을 했다고 한다. 그러나 왜 더 일찍 이 장사를 하지 못했는지 후회가 될 정도라는 그의 얼굴에서는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