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개그 콘서트의 인기 코너로 뜨며 시청자들의 공감을 얻고 있는 용감한 녀석들의 “안 될 놈은 안 된다”는 노래에는 좌절의 시대상이 반영돼 있다. 뉴스 트렌드 리포트는 현재의 한국사회가 전방위적 위기에 처해 있다는 자각 아래 원인과 해법을 고민해 본다.
자살률 1위, 절망의 터널에 갇힌 한국 사회
지난해 보건복지부의 ‘정신질환 실태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 한번이라도 우울증을 경험했던 성인이 10년 전에 비해 63%나 증가했다고 한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증상이 나타나도 병원이나 상담소를 찾는 비율이 15.3%에 불과하다는 사실로, 실제 우울증 환자는 훨씬 더 많을 것으로 추산된다.
우울증으로 인한 수면장애를 중점치료하는 어느 한의원 관계자는 “정신불안, 우울증 등 정신질환을 앓는 사람들이 급증하고 있다”며 “심한 스트레스나 여러 가지 문제로 인한 심한 상실감은 우울증을 유발시키는 중요한 원인이다. 우울하고 절망적인 기분이 들면서 짜증과 분노, 심하면 자살 충동까지 나타 난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OECD 가입국 가운데 한국은 자살률 1위에 올랐다.
이미 대한민국은 OECD 가입국 가운데 자살률 1위를 기록한 바 있다. 지난해 OECD가 밝힌 자료에 따른 수치이며, 한국은 지난 몇 년 동안 자살률 증가를 이어 오고 있다. 이제는 자살에 대한 뉴스가 더 이상 낯설지 않을 정도로 상황은 심각해졌다.
이 밖에 OECD통계를 살펴보면 대한민국은 근로시간이 가장 길면서 직업 만족도는 평균 이하고, 삶의 만족도 역시 그리 높지 못했다. 의료계 관계자들은 이렇게 삶의 질이 추락하는 동안 우울증이 크게 늘어나 자살 증가로 이어졌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우리 사회 우울증의 원인으로 지적된 심한 스트레스와 상실감은 과연 어디서 왔을까.
사회 문화와 시대상에 영향 받는 특성
미국에서는 지난 2008년 아메리칸 인디언을 제외하고 가장 높은 자살률을 보이는 인종이 한국인을 포함한 아시아인들이라는 조사 결과가 이슈로 떠오른 적이 있다. 당시 보도된 기사들 가운데 의료 매체지 NURSE는 한인 활동가의 분석을 통해 아시아인들의 정서적 특징은 주변인들의 관계와 문화에 따라 좌우 된다는 내용을 전했다(UIC Raises Awareness of High Rates of Asian Suicide).
가족과 주변 지인들로부터 좋은 학교(성적), 좋은 직장 등에 대한 부담감을 느끼고 있으며 어느 정도 기준에 맞추지 못할 경우 심한 압박으로 작용된다는 것이다. 아마도 오래도록 공동체 문화에 영향을 받아온 아시아인들의 특성일 것이다.
때문에 한국에서 자살률 증가의 원인으로 지목된 우울증이 과연 어떻게 늘어나게 되었나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삶의 주변과 정서(가치관)에 영향을 미치는 정치와 사회문화를 돌아봐야 한다.
MB정부가 만들어낸 경제적 상실감
김대중, 노무현 정부를 통해 민주화가 성공했다는 인식 아래 경제적 욕구가 중요 의제로 떠올라 현 정부를 탄생시켰다는 분석도 있을 만큼, MB의 경제 대통령 구호는 선거에 중요한 영향을 끼쳤다.
그러나 김대중, 노무현 정부를 잃어버린 10년으로 규정한 선거 마케팅을 통해 집권한 현 정부와 새누리당이 오히려 우리 사회의 상실감과 절망을 부채질 했다는 것은 대단한 모순이다.
MB 집권 중반을 넘긴 2010년 9월, 헤럴드 경제는 여론조사를 통해 우리 국민 90%는 “MB정부서 살림살이가 별 차이 없거나 더 나빠졌다”고 생각하고 있음을 드러냈다.
해당 여론조사에 따르면 MB에 대한 국정 지지도 부정평가 역시 큰 폭으로 증가했으며, 승자독식으로 더욱 커진 서민의 박탈감 등이 그대로 반영됐다. 그러나 MB와 집권 여당인 새누리당은 이런 여론을 반전시키지 못했다.
22일 청와대 춘추관에서 취임 4주년을 맞아 내외신 기자회견을 하던 중 물을 마시고 있는 MB ⓒ권우성
조선일보가 지난해 6월 미디어 리서치와 함께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우리 국민 10명 가운데 7명 이상은 MB 취임 이후 지금까지 경제 정책에 대해 ‘주로 대기업과 부유층 위주였다’고 응답한 것이다.
당시 여론조사를 실시한 미디어리서치 이양훈 부장은 “사회 양극화의 심화로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는 국민들이 많은 것 같다”고 분석했다. MB국정 지지도 부정평가 역시 상승했다.
올 초 현대경제연구원의 ‘제9회 대한민국 경제적 행복지수’조사 결과에서도 우리 사회는 일자리, 소득과 관련된 경제적 안정과 우위, 경제적 발전, 경제적 평등 모두 하락했고 이에 따라 전반적 행복감이 하락했다. 국민 10명 가운데 8명은 이미 경제적 측면에서 MB에 대한 기대를 버렸다는 것이다.
물질적 소유 욕망이 지배하는 한국 사회
경제가 나빠진 것이 과연 사람들을 우울하게 만들 수 있는가. 여기에 대한 답은 다음과 같은 몇 가지 광고 카피로 대체할 수 있다. ‘요즘 어떻게 지내냐는 친구의 말에, 그랜저로 답했습니다’, ‘당신이 사는 곳이 당신이 누구인지를 말해줍니다’ 이런 카피는 사회와 문화의 공감대 없인 만들어지기 힘든 문구다.
어느덧 한국 사회는 ‘물질적 소유’가 지나칠 정도로 삶의 가치로 자리 잡아 버렸다. 이것이 클수록 심화되는 경제적 불평등 아래서 맛보는 좌절과 절망 역시 커지게 된다.
‘명품’ 열풍을 비롯해 지금도 대중문화와 매체가 재생산 하는 소유의 욕망과 가치들은 사실 박정희 시절부터 내려온 유산이다. 한강의 기적을 외치며 성장을 위한 살인적 노동으로 국민을 희생시키기 위해서는 지배계층의 물질적 가치를 국민 개개인이 동일시하도록 만들어야 했다.
예를 들어, 경제를 살리자는 구호는 나라 경제가 좋아지면 집안 살림도 나아질 것이라는 일종의 최면이었다. 그 과정에서 인권과 행복을 포기당한 국민들에게 물질적 소유는 자연스럽게 삶의 가치와 존재 이유로 자리 잡은 것이다.
이런 사회에서 경제적 불평등은 가치와 행복을 박탈하는 불안 요소로 나타난다. 홍세화씨는 한겨레 인터뷰 특강(청춘)에서 이런 말을 하기도 했다.
“요즘 청춘이라는 이 값진 존재들마저 불안 때문에 결국 소유 앞에서 존재를 무너뜨리고 있어요. ‘부자 되세요’, ‘당신이 사는 곳이 당신이 누구인지 말해줍니다’ 이런 식으로 소유에 집착하는 탓에 값진 존재들이 속절없이 무너지는 겁니다.”
“불행을 겨루게 만드는 체제” 존속할 가치 있을까
‘88만원 세대’ 공저자인 박권일씨는 시사IN 233호 기고에서 우리 사회가 도달한 비참한 지점을 예능 프로그램들의 유형을 통해 밝혀 눈길을 끌었다.
그는 최근 서바이벌 방식의 예능 프로그램들이 늘어나면서 스토리가 필수 요소로 부각됐는데 MBC 우리들의 일밤 ‘내 집 장만 토너먼트 집드림’같은 경우 ‘불행’을 경쟁하는 프로라고 꼬집었다.
“‘노래 경연’과 ‘불행의 경연’에는 공통의 필수 요소가 있다. 바로 스토리다. 불우한 가정사, 안타까운 사고, 선천적 장애, 극도의 빈곤, 하다못해 성격적 ‘결함’에 이르기까지...대중은 눈물 콧물을 짜며 개개인의 비극에 몰입하지만, 그 와중에도 내면의 계산기를 두들기며 각자가 짊어진 불행의 크기와 무게를 냉철히 평가한다.”
박씨는 기고문을 통해 “인간으로 하여금 자신의 비참함을 자발적으로 전시하고 경쟁하게 만드는 체제란 얼마나 혐오스러운가”라며 경제 불평등으로 인한 또 다른 문화현상을 신랄하게 비난했다.
경제적 민주화 위한 정치를 기다린다
지금까지 우리 사회가 우울증을 만드는 원인을 정치와 문화 측면에서 고민해 봤다. 글이 길어지는 관계로 부족하지만 우선은 여기까지 써볼까 한다. 앞으로도 몇 편의 시리즈로 이어지는 글을 구상하고 있지만, 우리 사회가 처한 비참한 현실을 해결하기 위해선 불평등한 경제의 민주화가 필요하다는 인식이 확산 됐으면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