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newstrend report]/생활·문화

전기구이 통닭의 감동, 닭은 최고의 음식!

동네에 가끔씩 전기구이 통닭을 팔러오는 트럭들이 있다. 주로 도로 옆에 차를 세우거나 인도 위에 적당한 공간을 찾아서 주차한 뒤 세 마리 만원이라는 믿을 수 없는 가격으로 지갑을 유혹한다. 무엇보다도 근처를 지날 때 작렬하는 고기 구워지는 냄새가 기가 막히다. 두어 번 정도 사먹어 본 후 다시 찾는 일은 없지만, 전기구이 통닭 차량이 나타난 날이면 항상 먹을까 말까를 갈등하게 된다.

그냥 사먹으면 될 문제가 아닌 것이, 사실 양도 지나치게 많고 고기가 퍽퍽한 느낌이라 맛있게 먹은 적이 없었다. 전기로 구워지는 모습을 보면 상당히 바삭해 보이지만 집에 와서 먹어보면 겉의 껍질은 눅눅하고 의외로 기름도 제대로 빠지지 않았거나, 반대의 경우엔 너무 뻑뻑하고 딱딱하게 변해 있곤 했다.

물론 저렴한 가격에 많은 양의 고기를 먹을 수 있다는 점이 마음에 드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나의 경우에는 맛이 더 중요하다고 여기는 편이다. 그럼에도 전기구이 통닭 차량 옆을 지날 때면 항상 먹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된다. 그러면서도 결국 사 먹지는 않는다.

사진) 영양센타의 전기구이 통닭. 단출한 차림이지만 50년을 이어온 전통의 맛은 무시할 수 없는 존재감을 드러낸다.

그러던 어느 날, 내가 왜 이렇게 행동하는 것인지 곰곰이 생각해 보게 됐다. 먹고 싶어 하면서도, 막상 먹으면 맛없다고 투덜댈 것이라고 판단해서 결국엔 군침만 흘리며 돌아서는 행동을 왜 반복하는 것인지. 그 답은 바로 어렸을 적 먹었던 전기구이 통닭 때문이었다.

시장에서 가마솥에 기름을 붓고 튀겨내던 치킨이 가장 맛있는 것인 줄 알았던 시절에 명동에서 처음 맛본 전기구이 통닭은 그야말로 새로운 세상이 펼쳐지는 경험을 안겨줬던 것이다. 당시 가족들과 함께 찾아갔던 그 전기구이 통닭집의 이름은 그때도 무척 촌스럽다고 여겨졌었는데 이름하야 영양센타. 어린 나이에도 가게 이름이 무척 웃긴다는 생각이 들었었다.

더욱이 치킨의 튀김옷 입혀진 모양새와는 다르게 벌거벗은 닭이 바싹 익혀져서 나온 그 모습도 역시 맛있어 보인다는 생각이 들진 않았었다. 한참을 기다리다가 식탁 위에 놓인 닭의 크기도 무척이나 작아서 이게 뭔가 싶은 마음에 부모님을 잠시 원망하기까지 했으니 첫 인상이 그리 좋지는 않았던 것이리라.

그런데 생각과 달리 입에 넣는 순간 부드럽고 촉촉한 고기의 질감이 느껴졌다
. 한 번 씹으니 그 오묘한 맛이 입 안에 퍼지면서 혀를 감싸고 어느새 눈 녹듯 녹으며 목구멍을 타고 내려가 따스하게 배를 채워줬으니 그 감격과 놀라움은 말로 표현 못할 정도였다. 일단 한 번 먹어본 후 정신을 차려보니 접시에 수북이 쌓여있는 닭 뼈들을 바라보며 입맛을 다시는 경험을 하게 만들었던 전기구이 통닭과의 첫 만남이었다.

사진) 유기가 좌르륵, 겉은 바삭! 이것이 전기구이 통닭의 참 모습이다.

더욱이 닭 요리를 먹으면서 빵과 스프를 함께 즐길 수 있다는 것도 신선한 충격을 안겨줬으니, 이 세 가지 조합이 진정한 영양의 상징이기에 가게 이름이 영양센타인 것은 아닌가 여기면서 유년시절을 보내게 됐던 것이다.

하지만 전기구이 통닭을 먹자고 멀리 떨어진 그 복잡한 명동에 일부러 찾아가는 일은 당시에 쉽지 않은 일이었고, 그냥 편하게 시켜먹을 수 있는 치킨 가게의 메뉴들도 훌륭한 맛을 자랑했다. 오죽하면 외국인들이 한국의 양념치킨을 먹어보고 오 마이 갓을 연발하며 넘어간다는 말이 해외 동포들의 입을 통해 자랑스럽게 전해졌을까 싶다.

더욱이 수많은 치킨 프랜차이즈가 난립하면서 맛의 춘추전국시대를 열었으니, 현재는 수입맥주에 비해 맛이 없다는 평가를 듣고 있는 국산 맥주의 허전함까지 세계 최고의 동네 치킨들이 그 맛의 빈자리를 채워주면서 균형을 유지시킨다는 평가가 세간에 나돌 정도이다.

이렇게 국가 내수경제를 활성화 시키며 대한민국의 활력소가 되어 온 자랑스러운 치킨의 발전사 앞에서 전기구이 통닭은 상대적으로 찾아보기 어려웠고 점점 기억 속에서도 지워지는 듯 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 느닷없이 나타난 세 마리 만원이라는 혁명적인 광고문구로 소비자들을 유혹했던 그 전기구이 차량 앞에서 불현 듯 나의 혀와 목구멍이 기억해낸 그 아련한 추억의 맛! 그것이 바로 나를 혼란스럽게 만들고 갈등을 일으킨 원인이었던 것이다.

잃어버린 기억을 찾은 후 곧바로 맛의 본가를 찾아가고 싶었지만 사실 그렇게 미식가도 아닐뿐더러 절박한 삶의 문제 역시 아니었기에 또 잊고, 반복되는 일상에 찌들어갈 즈음. 길을 가다 우연히 체인점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커다란 간판에 촌스러운 폰트로 쓰여 있는 네 글자 영양센타. 순간 울컥하며 돌아온 탕자가 된 것만 같은 기분으로 가게 문을 열고 들어가기 까지, 사실은 망설이며 일주일 정도를 보냈다.

사진) 껍질이 종이보다 얇네! 고열량 걱정을 접고 기름기가 쏙 빠진 바삭한 껍질을 즐길 수 있다는 것이 전기구이 통닭 장점 가운데 하나.

마치 피천득의 수필 인연에 나오는 문구처럼 차라리 먹어보지 말 것을하며 변해버린 맛에 씁쓸한 후회를 안고 돌아설지도 모른다는 걱정 때문이었다. 어린 시절의 추억을 소중하게 지켜가고 싶은 순수한 목동의 영혼이, 아직까지 내 안에 간직되고 있었던 것일까.

뭐 그렇지는 않았던 것 같다. 일주일 후 가게 거울에 비친, 벌거벗은 닭의 몸통을 앞에 두고 혀를 날름거리면서 매끈한 곡선을 이루고 있는 다리 살을 물어뜯고 있는 나의 모습은 마치 아귀와도 같았기에. 맛은, 입에 넣는 순간 잊고 있던 유년시절의 풍경이 눈앞에 펼쳐졌다고 하면 더 이상 정확한 표현이 없을 것 같다.

사실 영양센타는 일반적인 브랜드 치킨들과는 다르게 체인점을 찾기도 쉽지 않은 것 같다. 그 흔한 홈페이지도 없을뿐더러 체인점을 본 것도 서울 시내 십여 곳을 돌아다니던 가운데 우연에 의한 발견이었으니까. 다만 닭 한 마리를 해치우는 동안에도 나이 지긋한 어르신들과 그 후의 세대들로 보이는 나와 비슷한 연령대의 손님들이 계속해서 찾아오는 모습은 인상 깊었다.

이 세상에서 참으로 기쁨을 주는 것이 몇 가지나 될까. 손꼽아 헤아려 보니, 확실히 처음으로 손꼽히는 것은 바로 음식이다.” -임어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