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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 : ~2010 >/사회

"이러니까 서울역에 청년 노숙자들이 몰리죠"

*이 기사는 인터넷 언론 <오마이 뉴스>에 전송되었습니다.


3월 25일 새벽 5시 30분. 인력 사무소를 나와 현장으로 향하는 이들의 발걸음은 가볍지 않다. 벌써 며칠 동안 밀린 일당을 받지 못하고 일터로 나가는 까닭이다. 보통 노가다라고 불리는 일용직 용역. 당일치기로 돈을 받으며 생활하는 이러한 노동 형태는 소위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빈곤층 서민들의 대표적 생계로 자리매김 해왔다. 그러나 불황으로 얼어붙은 건설, 부동산 시장으로 인해 공사 현장이 줄어들고 건설사들의 재정이 악화되면서 그 여파는 인력시장을 찾는 서민들에게 고스란히 전가되고 있었다.

“너 이 XX 저리 가.”

“(못 받은 돈) 삼일 치...”

“XX 내일 준다잖아! (지갑에서 돈 꺼내며) 일단 어제 거부터 받고, 빨리 일 나가라고!”

노원구에 위치한 어느 인력 사무소. 새벽바람을 맞으며 이곳을 찾은 노동자들에게 사장이 욕설을 날린다. 아직까지 받지 못한 지난 주 일당을 계산해줄 것을 요구하자 보인 반응. 문제의 인력 사무소는 강남에 위치한 어느 현장으로 일용직 노동자들을 파견한 후 매달 결제를 받아 돈을 벌고 있었다. 그런데 어찌된 영문인지 최근 들어 당일 지급해야할 임금을 주지 않으면서 파견을 재촉하는 상황이 계속된 것.

일당 기약 없이 일터로 나가는 일용직 노동자들

특히나 이곳과 계약을 맺은 현장은 초과된 공사 기간으로 인하여 늦은 저녁까지 야근을 시키기 일쑤. 때문에 노동자들은 다음날 새벽에 사무실로 찾아가야 돈을 받을 수 있다. 그런데 사장이 임금지불을 미루기 시작한 것이다. 간혹 불만이 심할 경우엔 며칠씩 밀린 임금 중 하루 치 정도만 계산해 주면서 이들을 다시 현장으로 출근 시키고 있었다. 인력 사무소로서는 노동자를 계속 파견해야 돈을 벌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해 놓고도 임금을 받지 못한 채 현장으로 향하는 노동자들은 불만이 끊이지 않는다.

“당장 방 값 내야 하는데...”

“아니, 사람들이 노가다를 왜 하는데? 자기가 일하고 싶은 날 일하고 당일 현찰로 지급받는 거. 그거 말고 좋은 게 뭐가 있어? 더럽고 힘들고 위험한데.”

“돈 받으러 가면 사장은 계속 미루면서...나중에 줄 테니 일하러 가라고 하고...몸이 안 좋아서 쉬어야 하는데 그러지도 못하고 있어.”

“다녀오면 준다고 해놓고 다음에 가면 또 같은 말하고...”

실제로 이들의 노동 강도는 매일 일하기에는 벅찰 정도의 살인적인 수준이었다. 인력 회사로 오기 위해서 새벽 4시 정도에 기상하고 현장에서 야근이 끝나 집에 오면 보통 밤 10시나 11시 정도가 된다. 씻고 밥을 먹고 개인적인 일을 마무리 하면 실제 취침 시간은 결국 4시간 남짓.

각종 소음이 끊임없이 울려 퍼지는 현장에서 지속적으로 무거운 것을 나르며 삽질하는 육체노동은 피로가 심해 날을 잡아 쉬고 싶어도 그러지 못한다. 인력 사무소에서 받지 못한 임금을 빌미로 계속해서 일을 보내기 때문이다.

혹시 모를 사고의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것은 기본이요, 힘들고 더러운 것은 물론이고 임금까지 제때 지불받지 못하기 때문에 일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 갈수록 적어진다. 그러나 사장의 눈 밖에 나면 밀린 임금을 받지 못할 것이라는 불안감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현장으로 향하는 사람도 많다.

그렇다면 이들이 현장에서 하는 일은 어떠한 것일까. 지난 21일 동행취재를 해보았다. 우선 현장에 도착한 노동자들이 천막에서 아침 식사를 마친 후 들어가는 곳은 놀랍게도 하수도 안.

머리가 빠개질 정도의 역한 냄새가 코를 찌른다. 각종 찌꺼기와 오물들이 떠다니며 콸콸 흐르는 구정물은 호수처럼 넓고 깊었다. 우리가 발을 디디고 살아가는 땅 아래 이렇게 거대한 하수 시설이 있었다니.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나니 영화 <괴물>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그 역한 곳에서 일용직 노동자들은 흙이 담긴 자루를 나르며 제방을 만들고 있었다.


▲안전모만 쓴 채 마스크도 없이 하수구 안으로 들어가는 노동자들.


▲거대한 하수구 안. 기둥과 벽 사방에 끼어있는 슬러지들과 극심한 악취. 물 위에 떠다니는 오물들.
(빛이 잘 들지 않는 곳에서 폰카로 찍어 화질이 구린 점 양해 바랍니다)

“물길을 바꾸는 거야. 자루로 물을 막고 그 안의 물은 양수기로 다 퍼내고...지상에 아파트가 들어서면 원래 하수도였던 이곳은 주차장이 되겠지 뭐.”

물속으로 자루를 던질 때 마다 풍덩! 옷이나 얼굴에 튀기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더군다나 40kg 정도 되는 자루의 무게도 만만치 않다. 오전에만 이런 자루를 약 천개 정도 던진다. 허리를 구부리고 힘을 쓰는 이들의 관절과 근육은 성할 새가 없는 것이다. 더군다나 공기 중에 떠다니는 유해물질도 무시할 수 없다. 실제로 관찰 결과 쏟아져 들어오는 햇빛 사이로 미세한 입자들이 계속해서 날리고 있었다.

악취로만 알 수 있는, 눈에 보이지 않는 공기 중의 화학물질 역시 존재할 터. 그러나 현장에서 노동자들에게 지급하는 보호 장비는 안전모와 장화 정도가 전부였다. 간혹 물속으로 들어가야 하는 노동자에겐 고기잡이배나 수산시장 등지에서 입는 비닐 옷을 제공해 주긴 했다. 그러나 정작 필요한 방진 마스크나 보안경 등은 제공해 주지 않았다.

때문인지 현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 특히 하수도 안에서 작업하는 사람들의 경우 기침을 하거나 콧물이 흐르는 증상을 많이 볼 수 있었다. 실제로 기사를 쓰는 나 자신 또한 팔 등에 두드러기가 생겼으며 인지하지 못하는 사이에 저절로 콧물이 흐를 정도였다(기침, 두통, 콧물 등은 대표적인 화학물질 노출 증세다. 이러한 증상은 현장을 떠나서도 사흘 정도 계속됐다).

인력 사무소장이 도망쳐 밀린 임금 떼이기도

흙이 담긴 자루를 다 던지고 수심이 깊어지는 오후가 되면 하수구에 있던 노동자들은 지상으로 올라와 다시 흙을 퍼 담기 시작한다. 허리를 펼 수 있는 시간이 별로 없는 것이다. 일하는 도중 잠깐 쉬는 시간에도 이들의 화제는 받지 못한 일당에 대한 것이었다. 과연 내일 가면 받을 수 있을까.

보통 인력 사무소의 경우 일당을 지급해 주지 않으면 일하려는 사람이 없어 운영이 되지 않는다. 그러나 이곳의 경우엔 돈 관리를 오직 사장 혼자서 하고 있어 자리를 비우거나 아예 나오지 않는 날은 일용직 노동자들이 돈을 받지 못한다. 어쩔 수 없이 다음날이나 나중에 받으려던 사람들, 또는 야근을 하며 하루 이틀 밀리기 시작한 사람들이 고초를 겪고 있었다.

그러나 또 다른 현장에서 들은 사정은 달랐다. 서울의 어느 구청 건축 현장. 지방에서 올라온 35살 최정민씨(가명)의 증언은 이렇다.

“사실 그런 일 흔해요. 작년에는 어떤 일이 있었는지 아세요? 인력 사무소는 보통 여러 곳의 공사 현장들과 계약을 하고 매월 중순이나 말일 정도가 되면 결제를 받아요. 그런데 경제 위기가 닥치니까 건설사가 휘청거리고 입금을 안 해주는 곳이 몇 군데 생긴 거죠.

그런데 인력 사무소는 일단 사람을 보내야지 돈을 받을 수 있거든요. 그래가지고 돈이 없는데도 나중에 준다면서 사람들을 막 돌리다가 결국 힘들어 지니까, 인력 소장이 도망을 쳤어요. 나머지 현장에서는 입금 다 해줬으니까 자기들이랑은 상관없다고 해버리고요. 그때 사무실로 사람들이 몰려와서 난리 났었죠.”


▲아파트 공사 현장 - 멈춰선 타워 크레인.


"이러니까 서울역에 청년 노숙자 생기죠"

목수 일을 하는 40대 박영덕(가명)씨 또한 작년부터 현장에서 임금을 지불 받지 못한 상태다.

“원래 일당 받는 잡부가 아니에요. 그런데 오죽하면 일용직 뛰러 나왔겠어요. 작년에 ㅇㅇ현장에서 일을 했는데 소장이 결제를 계속 미루다가 자기가 돈 들고 날랐죠.”

“그럼 어떻게 하셨어요?”

“민사고발 들어간 상태에요. 사실 노동부도 가봤는데...솔직히 걔들 필요 없어요. 권고만 하지 법적인 구속력이 없잖아요. 만날 사무실에 앉아서 컴퓨터나 두드리고...도대체 현장에서 하는 일이 뭔지 모르겠어요. (그따위로 하려면) 노동부 없애버려야 된다니까요.”

이번엔 청년 일용직 노동자의 불만.

“정부에서 뭘 지원해주고 한다고 하는데...정작 우리 같은 사람한테 무슨 소용이 있냐고요.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일을 해야 하는데 한 달에 겨우 십 수 만원이라도 벌어서 살아가면 실업자가 아니라고 하면서 수당도 안줘요. 그게 뭐냐고요. 얼마 전에도 무슨 저소득층 가정 지원인가 뭔가 해준다고 했던데, 나처럼 가정도 없는 청년 실업자들은 해당사항이 없죠. 그러니까 서울역에 청년 노숙자들이 생기는 거라고요.”

지금 노동 현장은 갈수록 불황의 체감 온도가 심해지고 있다. 어쩔 수 없는 자금난은 물론이고 다른 사람을 등쳐먹는 악덕 종사자들까지 판을 치면서 복마전을 방불케 하는 것이다. 더군다나 일용직 노동자 대부분이 월세나 쪽방, 고시원 등에 거주하고 있어 조만간 이들이 거리로 내몰려 노숙자가 될 위험까지 안고 있다. 실제 인터뷰한 많은 노동자들이 경제난 때문에 가정불화 까지 같이 겪고 있음이 확인됐다.

더군다나 노동부의 역할에 대해서도 심히 고민하게 만들었다. 노동부는 오래 전부터 산업 보건기준과 관련하여 규칙을 만들었지만 이것을 철저히 준수하는 현장은 드물었다. 이런 식으로 건설현장이 돌아간다면 대운하를 판다고 한들 서민들의 생활이 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오히려 빈곤층의 건강과 목숨을 담보로 현대판 노예제도가 생겨나는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