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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strend report]/영화

24시티, 당신이 지나쳤을 명품 영화

여기, 한 시대를 살아낸 사람들이 있습니다. 국가발전을 위해 가족과도 떨어진 채 공장이 건설된 지역에서 노동자로 청춘을 바친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정리해고라는 암담한 현실과 생활고 속에서도 살아갈 길을 마련해주던 공장이 이제는 허물어집니다.

공장이 있던 자리에 그들은 도저히 입주할 수 없는 초호화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기 때문입니다. 그곳은 바로 24 시티. 공장은 사라졌지만, 그들의 힘겨운 삶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지아장커 감독의 영화 <24 시티>는 공장 노동자들의 인터뷰를 통해 진행되는 작품입니다. 인물의 정면을 오래도록 비추는 화면은 섬세하고도 차분하게 관객의 감성을 자극하죠. 카메라를 똑바로 바라보는 인물과 마주보는 관객 간에 어떠한 인지과정이 일어나는 것 같아요. 상대와 눈을 마주본다는 행위를 통해 그 존재와 정서적으로 교감하는 것이죠.

때문에 헐리웃 영화처럼 극적인 사건이나 멋있는 모습이 없더라도 관객은 인물에 동화되어 그들의 삶을 듣게 됩니다. 인터뷰를 통해 진행되는 영화의 상영 시간은 마치 술자리에서 한 많고 굴곡진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으며 애틋한 시선을 나누는 것과도 같은 셈이죠. 게다가 적재적소에서 들려오는 음악은 너무나 감상적. 이 영화에 쓰인 음악은 영혼을 울릴만한 선율의 연주곡부터 흘러간 대중가요의 구성진 가락까지 다양합니다.

공간, 놀랍도록 생생한 삶의 질감

공간에는 삶의 흔적이 묻어있기 때문에 생명이 있다고 본다. 그 안에는 분명 인물의 이야기가 있고 그걸로 하여금 영화적 미학을 얻는다.” -지아장커

영화는 천천히 이동하는 카메라의 움직임을 통해 공간과 인물을 잡아냅니다. 때문에 관객에게 자기 삶을 들려주는 인물들의 사적인 정서와 느낌이 더욱 가슴에 와 닿게 되지요. 또한 누추하고 볼품없는 곳이라도 누군가 살고 있다는 사실 때문에 한편으론 숙연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당사자에게 그곳은 소중한 곳이니까요. 공간을 통해 삶이 전해진다는 점에서 저는 브레다 베번이라는 사진작가의 <놀라운 죽음>이라는 작품이 떠올랐습니다.


사진)브레다 베번 <놀라운 죽음>

아무렇지도 않은 듯 평범한 주방의 모습이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사진 속 중앙에 놓여있는 것은 베번의 연인이던 호르바틱의 유골이 담긴 상자거든요. 그녀는 예술과 삶의 동반자였던 호르바틱이 죽자 깊은 상실감을 견디지 못합니다. 그래서 유골이 담긴 상자를 두 사람의 기억과 흔적이 남아있는 곳마다 놓아가며 사진을 찍기 시작하죠. 때문에 사진 속 공간에는 연인끼리 공유하던 삶과 죽음의 상실감, 함께 보낸 시간의 사연들이 묻어나게 되는 거고요. 영화 <24 시티>의 공간 또한 마찬가지 입니다. 거리, 농구코트, 동네 이발소, 술집 등 모든 공간에서 우리는 그곳을 스쳐간 사람들의 소중한 흔적들을 만나게 됩니다.

더군다나 이 영화의 배경은 쓰촨성 칭따오에 위치한 곳인데요. 중국인들에게 커다란 비극이 된 쓰촨성 지진이 발생하기 하루 전에 극적으로 촬영을 완료했다고 하는군요. 때문인지 영화에 담긴 공간의 의미는 더욱 각별하게 와 닿습니다.

또한 영화에 담긴 사람들의 이야기가 바로 우리들 그리고 부모님들의 모습과 접점을 이루는 측면이 있기에 더 깊은 감동을 주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영화 속 가난한 노동자들의 모습과 개발 정책은 대한민국에서도 낯설지 않게 찾아볼 수 있으니까요. 시사회에서도 적지 않은 관객이 마지막 장면에서 울음을 삼킨 영화. <24 시티>는 알고 보면 상당한 논란을 품은 도전적인 작품입니다.

픽션과 다큐의 경계를 허무는 도발적 작업


나는 다큐멘터리와 픽션을 평행한 흐름 속에서 통합하기로 결정하였다. 왜냐면 이것이 지난 반세기 중국의 역사를 재연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내게 있어 역사는 언제나 사실과 상상의 혼합체이다.” -지아장커

작품을 위해 무려 130여명의 노동자들을 인터뷰했었다는 지아장커의 이 영화. 그러나 등장인물 가운데 몇 명은 배우들입니다. 실제 인물의 인터뷰와 배우들의 연기가 뒤섞인 이상한 작품이죠. 다큐와 페이크 다큐가 혼합된 것입니다. 왜 이런 연출 방식을 택했을까요?

단순한 대답일지 모르나 감독 본인은 이걸 왜 다큐멘터리로만 찍어야 하는지 의문이었답니다. 극영화로 만들고 싶어서 고민하다보니 이런 방법을 선택하게 된 것이라고 하더군요. 극영화와 다큐멘터리의 경계를 넘어서고 싶었다고 말이죠.

사실 다큐멘터리라도 연출자의 시각에 따라 이야기가 달라질 수 있습니다. 레니 리펜슈탈이 찍은 <의지의 승리>만 보더라도 히틀러라는 인물의 매력과 나치 독일의 웅장함이 화면 가득 넘치니까요.

지아장커의 영화에서 공통적으로 드러나는 것이라면 아무래도 인물과 그가 처한 환경에 대한 시선일 것입니다. 그는 공간을 통해서 인물이 그렇게 살 수 밖에 없었던 환경의 문제에도 주목하고 있습니다. <24 시티>에서도 등장인물들이 일했던 공장, 바로 군수 공장의 역할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지 않을까요?

한 시대 집단적 합리화와 환상을 향한 질타


이들이 일했던 공장은 직설적으로 말하자면 살인무기 제조 공장인 셈입니다. 방아쇠를 당긴 사람만이 아니라 명령을 내린 사람은 물론 그 무기를 만든 사람까지 살인의 공모자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그곳에서 일했다는 사실에 대해서 면죄부를 줄 수는 없을 겁니다. 오늘날에는 전쟁을 일으키는 국가만이 아니라 군수 산업으로 돈을 버는 탐욕의 시스템까지 비난의 대상이 되고 있으니까요.

그렇지만 인터뷰를 통해 알 수 있듯이 이들은 가난하기 때문에 그 일을 할 수밖에 없었고 주변에 마땅한 일자리도 없었죠. 특히나 공장이 세워진 1958년 중국의 현실은 대만과의 대립, 엄청난 가난, 대약진 운동 따위에 민중들은 그대로 따를 수밖에 없었던 정치 현실이 있습니다. 그렇게 이들의 삶은 희생되었던 반면 절대적 입장에서의 윤리 잣대가 남게 되는 것이죠.

하지만 등장인물 누구도 그 시절에 대한 비난은 하지 않습니다. 상처와 아픔은 늘어놓더라도 말입니다. 오히려 아련한 향수를 가지고 우수에 찬 눈빛으로 회상하는 인물까지 보이죠. 마치 아직까지도 나이 드신 어르신들이 그 옛날 박정희를 찬양하듯이 말입니다. 어쩌면 거대한 역사의 흐름 앞에 휘둘리는 민초들의 안타까움이기도 합니다.


게다가 경제는 국가 자본주의로 전환하면서 이제는 올림픽까지 개최해버린 중국. 엄청난 발전과 개발의 속도전 속에 위대한 중화사상을 고취시키기 위함인지 마오쩌둥의 사진과 조각상은 거리를 장식하다 못해 가정집까지 파고들어 신격화 되었다죠. 민족주의를 불태우며 국가의 이익이라는 명분하에 자본주의로 이행하는 것을 합리화시키려는 수단이라고 하는데 결국 이미지만 넘쳐나는 겁니다.

따라서 전적으로 사실만을 기록하는 다큐가 아닌 배우를 통한 픽션을 뒤섞었다는 것은, 진실과 거짓의 대립을 통해 한 시대의 집단적 합리화와 환상을 깨는 특징까지도 있다고 여겨집니다. (물론 배우가 말하는 것들 중에도 실제 인물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돈을 벌기 위해 배를 타고 가다가 아이를 잃어버린 고백이 그렇다고 하더군요)

24시티, 당신이 지나쳤을 명품 영화

우리는 이 영화를 통해서 무엇을 느낄 수 있을까요? 다른 나라, 그것도 알게 모르게 무시하는 정서가 스며있는 중국이라는 나라. 그곳 노동자들의 삶은 마치 거울을 보는 것 같습니다. 그들과 우리 모두 지구라는 공간에서 민중으로 살아가는 평등한 존재들이니까요. 나라와 언어는 달라도 삶이 가진 가치와 무게는 동일합니다. 더군다나 소박한 말을 통해서 기록되는 개인의 역사는 중국 사회라는 집단의 역사와 맞닿아 있기 때문에 결코 가볍지 않습니다. 일상의 보잘것없어 보이는 작은 것들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새삼 느끼게 되고요.

24시티.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빠르고 감각적인 오락영화도 아니고 의미 없는 웃음으로 순간적인 즐거움을 주지도 못하지만, 느리고 잔잔한 호흡을 통해 그러한 문화에 저항하려는 영화입니다. 그럼에도 개봉관이 딱 한 곳 뿐 이었다는 사실에 새삼 가슴이 아프군요.

여기 한 시대를 살아냈으며, 살아가고 있는 가난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들과 따스한 시선을 마주하고 싶으신 분들에게 추천하는 영화입니다.